시읽는 기쁨

조각달을 보면 홍두깨로 밀고 싶다

소금인형 2007. 9. 1. 16:04

조각달을 보면 홍두깨로 밀고 싶다

 

이인철

 

해가 긴 여름저녁

어머니는 흰 살 한 점 떼어 홍두깨로 늘린다

반상 위에 가난이 점점 넓어진다

가난도 꽉 차면 달이 된다

얇아진 반죽 아래에 반상의 굳은 피가 보인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만든 둥근 달을 접어

칼로 잘근잘근 썰어나간다

하얗게 쏟아지는 국숫발들

 

어머니는 그 국숫발들을 가마솥에 끓여

식구들에게 한 그릇씩 퍼준다

우리는 마당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가난한 배를 불렸다

 

조각달이 뜨면 가끔은 홍두깨를 들고나가

달을 둥글게 늘리고 싶다

                       (시와 시학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