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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을 보면 홍두깨로 밀고 싶다
이인철
해가 긴 여름저녁
어머니는 흰 살 한 점 떼어 홍두깨로 늘린다
반상 위에 가난이 점점 넓어진다
가난도 꽉 차면 달이 된다
얇아진 반죽 아래에 반상의 굳은 피가 보인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만든 둥근 달을 접어
칼로 잘근잘근 썰어나간다
하얗게 쏟아지는 국숫발들
어머니는 그 국숫발들을 가마솥에 끓여
식구들에게 한 그릇씩 퍼준다
우리는 마당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가난한 배를 불렸다
조각달이 뜨면 가끔은 홍두깨를 들고나가
달을 둥글게 늘리고 싶다
(시와 시학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