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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봄, 수목원을 읽다 / 윤승원 봄, 수목원은 만연체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화려한 문장을 쓰느라 술렁거린다. 노랗고 빨갛고 흰 색깔들이 나의 독서를 유혹한다. 나는 청명의 안개 속을 걸어 만화방창 꽃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 깃털 같은 햇살이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낮 시..
조선낫과 왜낫 조선낫과 왜낫이 낫이라는 사실만으로 동류인식(同類認識)될 수는 없다. 꼭 국적(國籍)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 외양처럼 판이한 그 성품 때문이다. '조선낫은 진중하고 왜낫은 경박하다.' 조선낫에 대한 편향적(偏向的) 지적일까. '조선낫은 미욱스럽고 왜낫은 지능적이다.' 그리 말하..
누비옷- 김영미 ‘좋은 인연’ 모임에 가는 날 오래된 옷 한 벌을 꺼내 손질한다. 집안에 경사가 생기거나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날 평소에 잘 입지 않아 장롱 깊숙이 넣어둔 누비 옷을 꺼내 입게 된다. 누비옷은 평생을 입어도 좋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정성이 깃든 옷이라 입을 때마다 흐트러진 마..
생, 바람 같은거 창가에 앉는다. ‘타이타닉’영화음악이 잔잔히 다가와 맞은편 소파에 기대고, 카페 안을 채운 커피 향은 소멸해 가는 내 기억을 더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인연. 가끔 기억의 케이블을 통해 묵직한 통증이 느껴져도 그것은 내 삶의 상처였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리움보다..
냉면 / 류영택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바깥에서 형이 두드리는 소리다. 걱정이 된 모양이다. 일을 하다말고 서둘러 답신을 보낸다. 탕 탕 탕. 정화조차량 탱크 용접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안과 밖, 형이 두드리는 망치질은 동생이 무사한지 안부를 묻는 것이고. 내가 두드리는 망치질은 망을 보다말고..
20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 미역할매의 노래 미역할매의 노래 - 조숙 미역에서 풀내가 난다. 미역도 등줄기 꼿꼿한 한그루의 바다나무다. 줄기, 잎사귀, 뿌리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척박한 바윗덩어리에 뿌리박고 포자로 번식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이 나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년 전..
저녁구름/헤르만헤세 나는 거실 겸 서재의 동쪽 벽에서는 발코니로 통하는 좁은 문들이 있는데, 그 문들은 5월부터 9월이 꽤 깊을 때까지 열려 있고 그 앞에는 한 걸음 너비에 반 걸음 깊이인 아주 자그마한 석재 발코니가 매달려 있다. 이 발코니는 나의 소유이다. 이 발코니 때문에 나는 몇 년 전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