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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달팽이/손광성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개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
노출 / 김훈 몸을 드러낸 여자들은 도시의 여름을 긴장시킨다. 탱크톱에 핫팬츠로, 강렬하게 몸매를 드러낸 여자가 저 쪽에서 걸어올 때, 더위에 늘어진 거리는 문득 성적 활기를 회복한다. 노출이 대담한 여름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여자의 옷을 보고 있는지 몸을 보고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분수대] 망반 [중앙일보] 뭔가에 홀리거나 빠져서 본래 서 있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비단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음주와 가무에 빠져 술집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사람, 명품에 빠져 제 경제 수준을 감안치 않고 백화점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콩깍지가 씌..
삶의 나무, 죽음의 나무 / 성낙향 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의 한쪽 어름에 공터가 있다. 그곳에는 버려진 문짝과 의자와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별 특징도 볼품도 없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원래는 어느 집 마당의 정원수였던 것이 그 집 식구들이 떠나고 주택마저 ..
능금나무 불꽃 / 구 활 몇 년 전 일이다. 사과 농사를 짓는 어느 후배가 능금나무 장작 한 짐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찾아 왔다. "형님, 이 능금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면 불꽃이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미룰 것 없네. 내킨 김에 바로 산으로 가 장작불에 닭이나 한 마리 고아 먹어보세." 그 길로 팔공산 ..
작위 / 은희경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게 된 것은. 한동안은 누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기만 해도 엄마 이야 기라고 지레 짐작했으며 남에게 그것을 눈치채이기 싫어서 짐짓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남에게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
혼잡한 거리에 문득 피는 꽃 / 복거일 도심의 거리에서 광고 쪽지들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반가운 사람들은 아니다. 복잡한 거리에서 길을 막고 쪽지를 내미는 손길을 만나면, 짜증이 나기가 십상이다. 그런 쪽지들을 보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나눠주겠지만, 대부분 읽어볼 만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