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읽는 기쁨 (46)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미완성을 위한 연가 김승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고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
늦가을 오후/ 도종환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를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
단풍드는날/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
사 랑 이정록 연초록 껍질에/ 촘촘 가시를 달고 있는/ 장미꽃을 한 아름 산다/ 네가 나에게 꽃인 동안/ 내 몸에도 가시 돋는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 꽃방울에게 싱긋 윙크를 하자/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그래, 사랑의 가시라는 거/ 한낱 모가 난 껍질일 뿐/ 꽃잎이 진 ..
밥과 잠과 그리고 사랑 /김승희 오늘도 밥을 먹었습니다. 빈곤한 밥상이긴 하지만 하루 세 끼를. 오늘도 잠을 잤습니다. 지렁이처럼 게으른 하루 온종일의 잠을. 그리고 사랑도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식은 숭늉처럼 미지근해져 버린 그런 서운한 사랑을. 인생이 삶이 사랑이 이렇게 서운하게 달아나는 ..
2011년 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래된 골목 - 장정희 작은 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놓아주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