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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을 만나다-1 본문

푸른 노트

남명을 만나다-1

소금인형 2008. 8. 22. 23:12

불가에서는 모든 관계를 인연설과 인과설로 설명한다. 몇 생이 흐른 지금 남명학문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은 전생에 남명과는 어떤 연으로 닿아있었을까? 그리고 우연히 합류하게 된 나는 그들과 어떤 관계였을까? 88고속도로를 달리며 잠시 생각에 젖는다. 

 해마다 여름휴가를 다녀왔건만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바람 한번 쐬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러던 차에 벗으로부터 산청에 가지 않겠느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 생각만으로도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간을 비워 놓겠다는 말을 했다.


지난 밤 까지 일기가 고르지 못하더니 자고나니 날씨가 맑다. 편한 차림에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약속장소로 가니 낯선 선생님들이 계셨다. 간단한 각자의 소개가 끝내고 일정을 설명 할 때야 오늘의 여행이 평범한 여행이 아님을 알았다.

그 선생님들은 남명학문을 연구하는 선생님들 이셨다. 

남명 조식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영남학파의 영수(領袖)였고 문집인《남명집》을 남겼다는 것과 그의 사상이 경과 의를 중요시 여겼다는 짧은 지식뿐이었다.

단순히 좋은 벗과의 산청 여행인줄만 알고 왔었는데 이런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남명을 찾아 더나는 여행은 고령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그곳은 남명의 매부인 월담이 살던 곳이었다.

살랑거리는 바람, 나지막한 새소리와 훈훈한 햇살이 비치는 곳에 월담의 유적지가 있었다. 유적지는 남명의 매부인 정사현의 비석 및 묘소와 남명의 누이 조씨 부인의 묘소가 있었다. 남명이 누이를 만나기 위해 고령의 월담의 집을 드나들면서 자연히 남명의 학문도 고령에 퍼졌으리라. 남명과 여러 학자들이 공부를 했다는 아름다운 월담정은 세월에 묻혀 흔적조차 볼 수 없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세상일은 거문고 석자요 <세사금삼척(世事琴三尺) >

먹고사는 것은 두석가래 집이로다. <생애옥수연(生涯屋數椽)>

누가 이 참된 즐거움을 알리오. <수지진경락(誰知眞境樂)>

가을달은 차가운 못에 비춰만 주네. <추월조한연(秋月照寒淵)>

월담이 벼슬자리를 떠나 고향에서 가야금을 뜯으며 지었다는 시 한수를 위안 삼아 합천으로 향했다.  

 

 

함벽루로 가는 초입에는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그 중에서도 남명이 비문을 지었다는 이영공유애비에 눈길이 갔다. 허나 비문 앞에서는 내가 배운 한글은 무용지물이었다. 까막눈의 답답함을 알기라도 한 걸까 동행한 정우락 선생님께서 해석을 하셨다.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남명이 생각하는 참된 관인상을 통해 남명이라는 인물을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에게 눈 맞추며 한 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우암이 바위에 썼다는 [涵碧樓] 라는 글자가 보인다.

함벽루는 세월의 흔적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옛사람은 간곳이 없고 홀로 비바람을 견딘 세월이 고단해 보였다. 시를 읊고 학문을 연구하며 거문고를 뜯던 풍류가 전설이 되었듯이 낙숫물이 직접 황강으로 떨어지는 운치 또한 먼 나라 이야기로 남아 있었다. 뽀얗게 먼지 쌓인 누 한편에 쓰인 ‘신을 벗고 올라가시오’ 라는 글귀가 아프다.

 

함벽루에서 본 황강의 절경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내려 보니 말문이 닫힌다. 그저 강과 내가 하나 되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파괴하지 않고 돌아가는 강물, 직선의 냉철함과 곡선의 부드러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남명이 함벽루를 자주 찾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유가적인 남명에게서 장자적인 색체가 있는 것은 이 함벽루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남명의 시 

 


잃은 것을 남곽자 같이 하지는 못해도/ 강물은 아득하여 앎이 없다네/ 뜬구름 같은 일을 배우고자 하여도/ 높은 풍취가 오히려 깨어 버리네’

 누가 그랬다.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초서체로 쓰인 남명의 시를 보며 그이 삶도 거칠 것 없고 자유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옛 선비들이 중국 여산 폭포에 비유하기도 했다는 황계폭포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현실을 초월 할 수 있을 것 같은 황계폭포는 부서져 흘러내리는 물이 유리구슬 같다. 한 동안 구슬의 난무를 바라보았다. 폭포는 앞을 의심하지 않기에 떨어질수 있다고 정선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대목은 그의 시 폭포의 한 대목이기도 하다.

남명은 이 폭포를 보면서 기개도 키우고 벗들도 만났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한 남명의 풍유를 상상하며 한 동안 머물다. 일어났다.

갈때는 몰랐었는데 계곡이라 길이 험하다. 정선생님은 성큼성큼 혼자서 앞서 걷고 있었다. 그대 누군가 큰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앞은 의심 안으셔도 뒤는 의심좀 해주이소. 우리가 사라져도 모르겠심더. 깔갈 거리며  뇌룡정으로 향한다.

 

뇌룡정 내부 모습


 

남명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웠다는 뇌룡정. 이곳은 남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곳이었다. 바로 신명 사도를 바탕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신명사도란 사람의 마음과 마음 바깥의 경계를 성곽으로 표시 한 것으로 신체적 외부로부터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사사로운 욕심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야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 한 것이다. 그래서 뇌룡정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바로 신명사도의 구관, 목관, 이관을 본떠 만든 것이다. 말하고 보고 듣는 것을 삼가 한다면 어찌 사욕이 생길 수 있겠는가

남명은 이곳에서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세상을 우레처럼 울리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드러내기를 원했다. 모순된 현실 정치와의 타협을 거부한 남명의 사상은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국난  있을때 곽재우 같은 의명들이 많이 나왔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대붕이 산다는 남쪽의 큰 바다 남명 (南冥). 비로소 그의 실체가 조금씩 다가온다.


 

 

 

남명이 말년에 머물렀다는 산천재로 가기위해 산청으로 향했다. 길에는 나무 백일홍이 열꽃처럼 피고 있었다. 지면 다시 피기를 반복하는 것이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고 그 향이 벌레를 쫓는다하여 우리나라 정자가 있는 곳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남명이 말년을 보냈다는 산천재로 가는 길, 본 적 없는 산천재의 설계도를 그려본다. 물론 마당에는 나무 백일홍 한그루도 심었다.

산천재의 백미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조망되는 점이라고 한다. 풍수를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참 좋아 보인다. 산천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했으며 내가 상상한 나무 백일홍 대신 450년 되었다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풍상을 힘들게 견딘 듯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봄 산 어디엔들 향기로운 풀 없으련만 /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 찾아 왔다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만 먹고도 남으리

  남명의 넉넉함이 느껴지는 시를 읽으며 우리는 갈길을 재촉했다. 

 

 

남명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내내 자신을 돌아 봤다. 게으름으로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하던 내가 보였고,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이유로 불의를 못 본 척 눈감아 버리던 내가 보였다. 시동처럼 연못처럼 잠잠하게 침잠만 하던 나에게 남명과의 만남으로 내 귀에 우렛소리가 들렸으며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여행이 사람의 마음을 훌쩍 키우는 일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아마도 오래동안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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