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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은희경 본문
작위 / 은희경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게 된 것은.
한동안은 누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기만 해도 엄마 이야
기라고 지레 짐작했으며 남에게 그것을 눈치채이기 싫어서
짐짓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남에게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일찍 나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
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
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
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진는 나'와 나 자신이 ' 바라
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 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
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
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
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행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
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
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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