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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이기철 본문

시읽는 기쁨

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이기철

소금인형 2010. 6. 15. 15:09

 

나는 생이란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 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멜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 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의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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