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황무지-세월호 추모 본문

푸른 노트

황무지-세월호 추모

소금인형 2014. 7. 6. 20:43

황무지

이미경

 

잔인한 봄이었다.

화려한 꽃소식이 팝콘처럼 터지는 때에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텔레비전으로 망망대해에 기울어진 배를 보며 경악을 할 때만 해도 모두 무사히 살아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도 여전히 책을 읽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강의를 했다. 그리고 텃밭을 가꾼다는 친구의 텃밭 구경을 하며 속절없이 가는 봄을, 아니 세월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다른 날과는 달리 일상 틈틈이 치고 들어오는 우울함과 불쑥불쑥 치솟는 화는 어쩔 수 없었다.

물에 빙산이 녹는 것처럼 세월호가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수많은 생명이, 꽃 같은 청춘이, 피지도 못하고 수장되는 모습에 분노하며 모두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그래도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며 제발 살아 돌아오리라는 간절함을 노란 리본에 새겼단다. 이 땅의 에미 애비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게다. 눈과 귀는 항시 세월호를 향해 있었다. 제발 빠른 구조가 되기를 그래서 무사 귀환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어른 말을 기다리다 산화된 순하디순한 아이들아!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말을 듣고 기울어지는 배에 바짝 엎디려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찍던 천진한 너희 모습에 가슴이 메어졌다.

무섭고 두려웠겠지. 너희는 어른들이 분명히 구해줄 거라는 믿음의 끈을 잡고 거기 그 자리에 지금까지 있는 거지.

미안하다. 생각해 보니 충효 교육은 신물 나게 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해주어야 할 것에 대한 교육은 빈약하기만 했구나.

적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이토록 우울해하고, 화를 내고 절망한 적이 없었다. 배가 떠 있던 자리에 리프트백만이 덩그렇게 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때때로 웃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해지기까지 하더구나.

바람이 분다. 황무지에 이는 바람 같은 가슴 속 황량한 바람을 잠재우며 이제 정성껏 노란 종이배를 접는다. 세월호에서 구조되지 못한 채 원통하게 죽어간 너희가 천국으로 타고 갈 배란다. 습하고 추웠을 그곳에서 나와 이제는 맑고 따뜻한 노란 배를 하나씩 타고 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가 침몰해도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이 무너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분노와 불신에 대한 생각은 깊어졌다. 분노와 불신을 잘 매조지하는 일이 이 땅의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황무지를 개간하듯이 처음부터 찬찬히 바루어야겠지.

황무지에서 튼튼한 열매를 얻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아.

노란 리본을 매세요라는 팝의 이야기를 기억하니? 감옥에서 지내던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녀가 아직도 사랑한다면 마을의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랬던 이야기 말이야. 물론 나무에는 사랑의 증표인 노란리본이 달려있었잖아.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노란 리본이 눈에 보이지 않는대도 사람들 마음에는 너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이 영원히 달려 있을 거야.

이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된다. 어서 일어나서 노란 종이배를 타렴.

천의 바람이 되어 이 땅에서 꾸었던 꿈을 더 높은 곳에서 이루렴.

'푸른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0) 2015.02.09
수필 아포리즘-시선  (0) 2014.08.06
주목작가 이미경-문장 가을호  (0) 2013.08.29
글쓰기 강의  (0) 2012.05.26
새해 아침에  (0) 201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