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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사월-낭송 원고 본문

글 소리 판

그해 사월-낭송 원고

소금인형 2016. 11. 6. 09:08

그해 사월--홍억선

 

 

그해 사월, 학교 울타리 너머 과수원에는 사과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 노신사가 교무실에 들어섰다. 시인 김윤식 선생이었다. 선생님은 백일장 행사에 학생들의 참여를 안내하고는 꼭 한번 용성으로 찾아오라고 연락처를 남겼다.

 

용성으로 가는 누런 황톳길을 따라 선생님의 자택에 들어서자 맨발로 과수원을 돌보던 선생님은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셨다. 집앞 사과나무에는 꽃이 만발하였고, 꿀벌이 잉잉거렸다. 선생님은 시렁 위에서 낡은 책을 꺼내 툭툭 털더니 한 쪽을 펼쳐 보였다.

설령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먹장 같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쳐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앓고 있는 하늘 구름장 위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기 때문…….”

선생님의 대구 2·28 기념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선생님은 자주 젊은 문인들을 불렀다 시장통 돼지골목에서 삶은 고기를 먹고, 찻집에서 커피로 입가심을 하

 

 

 

실 때마다 당신께서 돈을 내셨다. 그 무렵에 선생님께 반가운 일이 생겼는데 서울 수유리 4·19 국립묘지에 시비를 건립하게 된 것이었다.

그대 거룩히 뿌린 선혈 / 개선의 화원에/ 다시는 어느 아귀인들 범치 못할 / 정의의 기치여, 영원히 겨레 위에 펄럭이어라

시골 다방의 어두운 불빛 아래서 시 합장을 소리 높여 낭송할 때는 손이 떨리고 눈빛이 이글거렸다.

문단 후배들에게 무척 자별했던 선생님은 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 날, 바람이 되어 자유의 먼 길을 떠나셨다.

 

이제 또다시 사월이다. 며칠 뒤에는 용성 선생님댁 과수원에도 사과꽃이 만개할 것이다. 수유리 국립묘지에도 대구의 2·28 공원에도 경산 남매지 시비 앞에도 무성한 봄꽃들이 일제히 함성처럼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