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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이미경
같은 장소를 돌고 또 돌았다. 분명히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쭉 가다가 왼쪽에 있었다.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혹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어 찾아 헤매다 보니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오게 되었다.
며칠 전 소파를 사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 내게는 소파 외의 다른 것들은 희미한 배경에 불과했다. 그런 중에도 한눈에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바로 콘솔이었다. 산뜻한 청색과 클래식한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예쁜 콘솔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으나 그때는 소파를 사야 했기에 짧은 시간 눈길만 주고 그곳을 지나왔다.
하루가 지나자 눈앞에서 콘솔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벽면에 붙여 놓는 작은 탁자인 콘솔은 포인트 가구로 대부분 중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자리에 놓는다. 집안의 첫인상인 셈이다. 우리 집은 흰색 약장이 콘솔을 대신하고 있다. 약장 위에는 앙증맞은 화분이 있다. 아이보리색 벽지에 흰색 약장, 그 위의 초록 화초가 주는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콘솔을 보고 온 이후 흰색 약장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계열의 벽지와 약장이 너무 단조로워 보였다. 싫었다. 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증이 일었다. 그렇게 예쁘고 고급스러운 콘솔은 흔할 것 같지가 않았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집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사야 할 것 같았다. 갖고 싶다고 무조건 사는 나이는 아닌지라 차분히 생각을 모았다.
-지금 콘솔이 꼭 필요할까?
‘이참에 집안 분위기 바꿔보는 거지. 첫인상이 환해 보이면 좋잖아.’
-소품 가구라 실용성은 없을 거야?
‘3단 서랍이 있었잖아. 실용성과 멋,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가구였지.’
-꽤 비싸 보였는데?
‘돈은 벌어서 뭐 하니. 내년에 남편 퇴직하면 사기가 더 힘들어질걸.’
냉정한 질문에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것은 콘솔에 대한 갈망이었다.
결국, 가구 아울렛을 다시 찾았다. 얼마 전에 왔다 갔기에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헤매고 있다.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몇 번 마주친 상인이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다. 보아 둔 가구가 있어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힘없이 웃었다. 상인은 전시한 위치가 바뀔 수도 있다면서 가게 안쪽까지 잘 살펴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매장을 두세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 다른 매장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다시 살펴보았지만, 콘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상호를 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콘솔이 아른거렸다. 아이보리 벽지를 배경으로 청색 콘솔 위에 빨간색의 멋진 자동차 소품을 올려놓으면 집 분위가 환해질 것 같았다. 노란색 도자기를 놓아도 예쁠 것 같았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콘솔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그 콘솔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투적으로 소파만 보고 다니던 내가 잠시 멈추기에 내 눈길을 따라 가봤단다. 그런데 남편의 기억은 나와 아주 달랐다. 콘솔의 색이 어두웠고 디자인 또한 평범해서 콘솔로는 아쉬운 가구라 했다.
콘솔은 17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패션 가구였다. 이때 나온 콘솔은 대부분 조각으로 멋을 냈다. 가구인 동시에 조각품이었다. 지금도 콘솔은 실용성보다는 장식품 성격이 강한 가구다. 남편 말처럼 콘솔은 어느 정도는 눈에 띄는 맛이 있어야 한다. 찬찬히 생각하니 남편이 더 객관적으로 봤을 것 같다.
내가 콘솔을 안 것은 중학교 때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하얀색 바탕에 붉은 장미꽃이 그려진 작은 탁자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갈색 가구를 가지고 있었다. 크기도 큼직한 실용성의 가구들이었다. 작고 예쁜 가구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작은 액자가 놓인 예쁜 콘솔은 내 꿈이었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산다. 이루지 못한 꿈은 늘 아쉽다. 그 아쉬움은 시간을 먹고 욕망으로 자란다. 웃자란 욕망이 콘솔의 아름다움을 부풀렸으리라. 욕망은 한순간에 미혹에 빠지게 하여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2005년 제 1회 프런티어 문학상 수상
2006년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2015년 대구문화재단 창작기금 수여, 수필집 「모자이크」 발간
2019년 대구의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