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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의 수필세계 본문

소금인형 수필2

이미경의 수필세계

소금인형 2020. 2. 6. 11:14

이라는 언어가 지향하는 세계

-이미경의 수필세계

 

1.

수필가 이미경은 단아하다. 말씨가 그렇고 맵시 또한 그러하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따뜻하고 지혜롭다. 짧지 않은 인연을 이어오는 동안 보아온 그는 수필가로서, 한국어교사로서 탄탄하게 자리매김한 여성답게 당당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창작활동으로 2015년에는 첫수필집 모자이크를 출간하였다.

그의 스승인 홍억선 수필가는 발문에서 수필집 모자이크를 관통하는 주제는 소통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동의한다. 소통이란 어휘에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자하는 열망이 포함되어 있으며 먼저 손을 잡고자하는 선의가 전제되어있다. 열고 손잡고 함께하려하는 태도가 수필가 이미경의 타자와 세계를 대하는 가치관이며 세계관이다.

대상의 희로애락에 공감하지 못하면 수필을 쓸 수가 없다. 쓴다고 해도 건조한 기록이 되거나 공허한 메아리에 머물게 된다. 수필문학의 질료인 소재와 제재는 거의 대부분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자연이나 인생의 고락, 사회현상들과 부조리에서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자연에 대한 외경,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이 수필문학의 근원이며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경의 주제인 소통은 그러므로 그의 문학관과 세계관에 부합한다. 그의 주제인 소통을 총론으로 가름하고 이 지면에서는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각론으로 가보고자 한다.

 

2.

<꽃 풍장>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놓은 작품이다. 도입부의 분위기가 기막히다. ‘울고 있을 것이다.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는 슬픔에 엎드려~’ 법당 안에서 동생이 남편과 사별한 슬픔에 엎드려있고 문밖에서는 작가가 그 슬픔을 가늠하면서 마음 아파하고 있다. 법당 문을 사이에 두고 자매는 서로 섬처럼 있다. 여기서 이미경의 언어인 이 등장한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섬을 상징적인 언어로 쓰고 있다. 이미경의 수필들에서 섬은 개별적으로 떨어져있으나 이어지고자하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섬은 구체적인 사물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표징이며 형이상(形而上)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도입부의 분위기가 기막히다고 했다. 처음 두 단락이 자아내는 슬픔의 정조(情操)는 아름다워서 더 슬프다. 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제부가 떠나던 날에 대한 서사는 도입부의 슬픔을 한껏 고조시킨다. 첫 문장과 도입부는 글의 얼굴이다. 가히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바람의 길이 보인다. 꽃잎이 허공에서 그리는 길이 바람의 길일 것이다.’ 작가의 시선이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꽃이 바람에 날리고 떨어져서 나무아래 쌓이는 것을 보며 작가는 꽃진 자리의 생채기를 생각하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그리 견고한 게 아니었다. 꽃잎이 떨어지듯 움직임을 가만히 놓은 게 죽음이었다.대수롭지 않은 것이 보태어져 삶이 되듯이 죽음 또한 삶이 차곡차곡 쌓이다 멈춰버린 것이었다.

 

작가는 꽃이 바람에 떨어져 쌓이는 것을 보면서 꽃의 풍장을 생각한다. 삶이 끝난 자리의 상처와 슬픔을 생각한다. 죽음을 꽃 풍장에 투영한다. 꽃은 졌지만 다시 핀다. 여기에서 윤회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동생의 슬픔이 승화되기를 소망한다. 슬픔의 미학, 비장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

이미경의 언어가 제목이 된 작품 <>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자가 울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뇌경색으로 말과 몸짓이 이상해진 어머니가 낯설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작가는 어머니를 여자로 표현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픈 딸의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여자는 화자의 아픔을 토설하는 장치, 일종의 강조법이라 하겠다.

제발 울지 마세요. 나도 지금 상황이 두렵다고요. 조금 초라하다 느껴도 무심한 척 의연한 모습으로 있어주세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마음 속 말을 삼키며 화자는 작은 섬이 되어간다. 병실에는 홀로 외로운 섬이 된 노인환자들이 있다. ‘다도해가 된 병실 안으로 석양이 비친다. 삶의 고통과 무게는 인정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 ‘다도해란 표현은 탁월하다. 개별적 존재는 저마다 한 개의 섬이며 존재가 가지는 필연적인 무게는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서늘한 현실 인식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결미의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화면은 우연이었겠지만 작가의 곡진한 소망을 담아낸 것일 터이다.

 

<고인돌 앞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인돌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유가 시작된다. 사유는 상상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난다. 수필의 영역 또한 무한으로 확장 된다. 고인돌, 거기에 묻혀있을 청동기시대의 남자를 떠올리면서 장구한 역사는 내 아버지까지 한꺼번에 압축된다. 살아가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고인돌 밑에 잠든 사내는 내 아비의 아비가 되어 깨어난다. 그의 아내는 내 어미의 어미이다. 내 아비의 아비는 사냥을 하고 내 어미의 어미는 곡식이 바닥난 토기를 긁는다. 먹고 사는 일은 그토록 절절한 것이다. 남자는 사냥을 하다 짐승한테 죽음을 당했다. 그런 지아비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려고 여자는 남자의 가슴을 돌로 지그시 눌렀다. 작가의 상상에서 엮어낸 서사이다.

줄거리 사이사이에 화자의 아버지가 교차된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가 쏜 화살과 누군가가 휘두른 검을 피하느라 진을 뺀청동기의 남자는 내 아버지와 동화된다. 더하여 선사시대의 남자와 내 아버지의 고단함 위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삶의 무게는 예나 지금이나 버겁고도 버거운 것이다.

 

<닿지 않는 소리>

작가의 일관된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배관이란 소재로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윗집과 아랫집에 살면서 얼굴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인사도 없이 지낸다.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많이들 그렇게 산다. 층간소음이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중재를 위해서 관계기관에서 나서는 일도 드물지 않다.

배관으로 윗집과 아랫집이 연결되어 있다. 배관에 물이 흐를 때 거기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나는 윗집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코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배관으로 연결된 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로 서로가 살아있음을 알려왔다.

 

소통의 과정에서 부딪친 어려움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위의 세 문장으로 이 작품은 요약되고 완성된다. 소통이란 결정(結晶)을 얻기 위해 배관을 소재로 가져온 건 촌철살인이다. 윗집과 갈등을 빚었던 문제는 물리적으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게 현실이다. 수필이 마냥 해피엔딩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말이 진솔해서 좋다.

 

<모자이크>

이미경의 수필집 표제작이며 대표작이다. 아들의 방학숙제를 도와주는 것으로 글이 시작된다. 그 장면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다. 언뜻 보기에 단순한 줄거리 같지만 작가는 모자이크란 제재를 깊이 있게 천착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찢어 붙인 하나하나의 색종이 조각을 작가는 으로 인식한다. 하여 작디작은 색종이 조각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획득한다.

 

모자이크를 해놓은 몇 개의 색종이가 흰 도화지 위로 섬처럼 떠오른다. 크게 찢어진 노란 종이는 대륙생성을 꿈꾸다가 섬이 된 듯 고독해 보이고, 작게 붙여진 두 개의 점은 지각변동으로 섬이 된 듯 쓸쓸해 보인다. 제가끔 외로운 섬 같은 존재가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하고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은 여백에 있다고 한다. 점과 점사이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적당한 긴장감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무릇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제 색깔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을 인식하며 어울릴 줄알아야한다. 모자이크란 제재는 여기에서 그 의미에 깊이와 넓이를 확보한다. 색종이 조각들이 모여 곰돌이 푸가 움직이는 형상이 되자 작가는 아들에게 그 다음을 맡긴다. ‘가 걷는 길이 들길이 될지 산길이 될지는 아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아들들의 인격형성의 바탕을 갖추는데 부모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아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우주 속의 한 점 모자이크 같은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는 개인의 몫이라는 진정성 있고 진중한 결미에 이른다.

 

<줄자>

소재가 곧 제재가 되고 제목이 되었다. 줄자에 예사롭지 않은 함의가 있다. 줄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다. 길이를 재기 위해서 필요한 줄자를 작은 아들의 책상에서 찾았다. 그 다음의 서사는 대입시험을 치른 후에 의기소침해하는 작은 아들에 대한 엄마의 애틋한 마음과 그것을 함께 극복하는 모자의 모습으로 전개된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작품에서 줄자는 사물로 등장하나 단순히 물건이 아니다. ‘바르고 곧은 막대자에 얼마간 주눅이 들어있지만 줄자는 그 길이를 한껏 늘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가능성은 위안이며 희망이다. 줄자를 풀었다 감았다하며 제 몫의 삶을 살아갈 아들을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전해지는 따뜻한 글이다.

 

3.

이미경의 수필세계를 몇몇 작품으로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작가가 각별히 아끼는 작품들이 더 많이 있겠지만 여기쯤에서 마무리할까한다. 이 지면이 미처 읽어내지 못한 언어나 의미들은 이미경 수필세계의 또 다른 영역으로 남아있을 터이다. 이미경의 작품들에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그가 매우 맑고 착한 심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육친은 물론이고 다문화가정을 포함한 이웃이나 길고양이까지,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그들과 소통을 이루며 함께하려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수필가 이미경에게 은 주요한 언어이며, 기호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 섬들은 소통이라는 장치를 통해 대륙을 꿈꾸고,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수필가 허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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