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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본문

소금인형 수필2

애물단지

소금인형 2019. 9. 1. 11:31





애물단지2.hwp


애물단지/이미경

 

내일 이사를 간다. 포장이사를 해도 직접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부산하기 그지없다. 먼저 귀금속처럼 돈이 되는 물건이나 중요한 서류, 통장, 도장은 작은 여행용 가방에 담아 차 트렁크에 실어다 놓아야 한다. 그리고 속옷들은 민망하지 않게 상자에 담아 보자기로 싸서 놓는다.

이사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서다. 필요해서, 예뻐서 사다보니 수납장은 포화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이번 이사를 계기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한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리라. 공간을 채우느라 잃어버린 다른 공간을 찾을 것이다. 불필요한 일에 쓰던 에너지를 내 안으로 돌려 물질이 아닌 정신적 만족의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다.

장식장의 인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 개구리 인형이 가장 많다. 다채로운 자세와 표정에 매료되어 한때 열심히 모았던 것이다. 춤추는 개구리. 웃는 개구리, 자는 개구리, 낚시하는 개구리. 기타 치는 개구리 수많은 개구리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소재 또한 도자기. 금속, 헝겊, 나무, 고무 등 다양하다보니 개수가 많다.

하나 둘 모으던 것이 어느 순간 보관할 곳이 없어져서 인형 모으는 것을 그만 두었다. 인형을 더 이상 사지 않자 차츰 관심도 식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주인의 관심에서 벗어난 인형들이 눈길을 의식했는지 졸고 있던 눈을 부스스 뜬다. 다시 봐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한다.

베란다에는 춘란 화분이 가득하다. 오래 전 남편이 친구 따라 강남을 갔다 왔다. 친구 중에 야생 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남편은 난에 대한 지식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희귀종난의 가격이 수백만 원 한다는 이야기에 혹했는지 몰라도 주말마다 열심히 친구를 따라 다녔다. 난에 문외한 남편이니 당연히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춘란만 가지고 왔다. 그런 난을 남편은 자신이 직접 캔 것이라며 애지중지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입을 귀에 걸고 들어 왔다. 친구가 희귀한 난 2개를 캤는데 하나를 주었다 했다. 희귀한 난은 돌연변이 난이라고 했다. 초록색이어야 할 난 잎의 반이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남편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누렇게 뜬 잎인 줄 알고 뜯어낼 뻔 했다.

돌연변이 난은 키우기가 까다로웠다. 남편은 원종보다 약하다며 물을 준 후에는 잎에 묻은 물을 닦아주고 선풍기를 틀었다. 화상을 입는다 했다. 정성을 들였음에도 난은 보름을 살지 못했다. 그 후로 남편은 더 이상 친구 따라 강남을 가지 않았지만 평범한 춘란에게 지금까지 정성들여 물을 주며 가꾼다. 이 또한 화초를 좋아 하는 친구에게 주리라.

창고 안을 들여다본다. 액자들이 가득하다. 아트재테크로 산 그림들이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한 점도 없다. 길거리에서 산 무명작가의 작품이거나 사진 액자뿐이다.

그림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거실 벽에는 영화 포스터를 걸고 식탁 벽에는 과일이나 꽃그림을 걸었다. 감명 깊은 영화를 보고나면 거실의 포스터를 바꾸었다. 식탁의 그림들도 계절에 따라 바꾸다 보니 그림 개수가 제법 많다. 하지만 이사를 가면 벽에는 아무것도 걸지 않을 것이다.

싱크대 안에는 그릇들로 가득하다. 결혼 할 때 어머니가 사준 그릇부터 예쁜 그릇이 보일 때마다 장만한 것들이다. 버리지는 않고 사기만 해서 지금은 쓰는 그릇보다 쓰지 않는 그릇들이 더 많다. 한 번도 손이 간 적 없는 그릇도 보인다. 어릴 때 배운 절약정신과 뭐든 잘 두면 쓸모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한몫을 했다.

지금 내가 본 것들은 모두다 애물(愛物)이다.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 자꾸 집착이 간다. 물건에 대한 추억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가볍게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적당한 사람을 떠올리며 전화를 한다.

열정과 돈과 시간을 들여 사 모았던 인형들을 가져가겠다고 손드는 이가 없다. 춘란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물건이다. 그릇과 그림은 쓸 만한데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단순한 삶을 위해 처리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모델하우스처럼 해놓고 살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내게는 애물이지만 남들에게는 한 푼의 가치도 되지 못하나 보다.

이사 후에도 나는 여전히 인형의 먼지를 닦고 난에 물을 주고 계절에 맞는 그림을 바꾸게 될까 두렵다.

내 애물(愛物)들이 애물단지가 될 줄 이야.

 

대구문학 0219.10월호

 

계간 수필세계 등단

1회 프런티어 문학상 수상

대구수필가협회 이사, 수필세계작가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알바트로스 회원

2015년 대구문화재단 창작기금 수여. 수필집 모자이크발간


애물단지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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