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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본문

푸른 노트

시계태엽 오렌지

소금인형 2009. 6. 4. 18:55

빛나지만 옥에 티.

                                                        

시계태엽 오렌지는 내용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어두운 영화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해 볼만 한 철학적 주제들이 여기 저기 들어 있어 무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다지 무거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유는 영화가 독특했기 때문이다. 배경음악, 미장센이 그렇고 서술형태가 그랬다. 

주인공인 알렉스가 범죄를 저지를 때 나오는 음악들은 긴장감이 돌거나 어둡지 않고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그리고 반사회적인 폭력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도 영화 곳곳에는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소품들이 많이 나온다. 알렉스와 그의 부하들의 의상에서부터  소설가의 집, 취조실, 병원 등등 여러 곳에 흰색이 보인다.   

영화의 서술도 주인공 알렉스가 자신의 삶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형태를 띤다. 이러한 서술 형태는 주인공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내면 심리를 드러내면서 친근감을 형성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끝까지 반사회적 인물로 남는 알렉스의 조근거림은 오히려 거리를 두게 한다. 이것은 마치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와 같은 역할을 했다. 브레히트는 관객들이 연극의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거리를 두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연극 속 사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극 장면사이 사이에 합창단을 등장시켜 연극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노래하게 하거나 내용을 객관적으로 담은 현수막을 들고 서 있게 하기도 했다. 이런 거리두기를 통해 내용에 몰입하지 않도록 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장면과 상황에 부자연스러운 음악과 소품을 사용해서 집중과 몰입을 방해한다. 그것은 객관적 판단을 위한 거리를 만들어 낸다.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은 폭력성과 반사회적인 의미를 대비시켜 독특한 이미지로 나타났고 알렉스를 내세운 1인칭 서술 구조는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영화는 선과 악에 대한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며 인간 심성개조에 대한 심오한 물음표를 던진다. 인간의 심성을 상징하는 오렌지를 시계태엽이라는 과학으로 강제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가 제거된 선이 옳은 것일까?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교화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알렉스는 끝까지 반사회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사이코패스는 교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를 사회는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합리적일까라는 물음이 다시 나온다.

영화에서는 교도소장의 대사를 통해 보복론을 목사의 대사를 통해 치유론을 제시한다. 고대사회의 8조법금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든지 목사의 설교처럼 교화로서 치유하든지 해야 한다. 전자처럼 처벌을 할 경우 알렉스만이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생긴다. 국가는 그 폭력을 컨트롤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알렉스는 루드비코 치료를 받던 도중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이 나쁜 행동이었다는 말

을 한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라는 개념이 강제적으로 머릿속에 박힌 것이다.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선을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선과 악을 강제하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넘어선 행위어서는 곤란하다. 선과악의 선택에 자유의자가 배제된 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화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그것을 통제하려는 것 역시 악하며 사회는 더더욱 악하다는 메시지를 풍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원색적인 색감과 과거와 미래가 복합되어 있는 초현실적인 의상, 다분히 연극적이면서 악의를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대사와 더불어 철학적인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찬사를 받는 영화이지만 한계점도 보인다. 

알렉스의 성장과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유아기엔 더욱 그렇다. 알렉스의 욕망은 남근기적, 소아적 본능이 어린아이 그 자체이다.

알렉스의 내면에는 다양한 정신연령을 가진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대부분은 알렉스 주위의 사람, 그중에서도 부모에게 상처 받으며  만들어 진 아이들이다. 가해자는 부모의 내면에 숨어 있던 상처의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물리적인 힘만 세진 부모의 내면아이들이 분노의 주먹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사람 내면에는 여러명의 아이가 살고있다.  고통을 받을 때 극복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춰버린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구타당하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아이,  길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헤매던 그때 성장을 멈춘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을 듯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

영화는 가족,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배제된 채로 철저히 주인공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라면 알렉스에 대한 객관적인 더 많은 정보와 근거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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