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종교(2009. 5. 12 화 ) 본문
둘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종일을 코끝에서 단내 나게 종종걸음 치던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틈이 생겼다. 그 틈은 무성한 잎사귀를 떨쳐낸 겨울나무처럼 헛헛함을 자주 느끼게 했다.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가을빛이 마냥 좋던 날, 무작정 걷다가 이른 곳은 성당 뜰이었고, 성가대의 노래 소리에 안식을 얻은 나는 그날 이후 믿음을 갖게 되었다.
조선말에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은 다층적 신앙이었다. 그는 [대한제국 멸망사]에 이렇게 써 놓았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불교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떤 때에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불교적 미신을 믿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적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종교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그가 고난에 처해 어떤 신앙에 경배한다면 그때에야 말로 그의 진지한 신앙심이 나타날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종교생활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느님을 믿는 나는 제사도 지내고 조문을 가면 애도의 뜻으로 고인에게 절도 한다. 하지만 내가 고난에 처하거나 어떤 신앙에 경배해야 한다면 그것은 가톨릭이다. 나에게 있어 신앙은 친정 같은 의미다.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간단한 기도와 함께 명상을 하며 충전하기도하고 위로 받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해체되어 옳고 바름이 불분명한 시대에 그래도 내 나름의 기준이 되어 주는 것이 종교다. 나를 세워주고 잡아주는 그런 곳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신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내 자신에게 거리낌이 없는 삶을 믿는다.
조상이 제사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신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나는 신앙인이다.
'푸른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계태엽 오렌지 (0) | 2009.06.04 |
---|---|
아버지의 상자 (0) | 2009.06.03 |
다시본 힌국인의 의식 구조(2009.5.9. 토) (0) | 2009.05.12 |
오월(2009. 5.2 일) (0) | 2009.05.04 |
돌아서서 떠나라 (2009. 5. 2. 토 ) (0) | 2009.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