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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문학관 공모전 대상작품 본문

수필읽기

김유정문학관 공모전 대상작품

소금인형 2009. 8. 14. 11:13



 

외닫이 격자문


전옥선 


아래채가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많이 허물어졌다. 할 수 없이 중장비를 불러서 처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허물기 전에 외닫이 격자문을 뗐다. 이 문은 할머니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유품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만사 음과 양이 있듯이 평생을 해로하기 위해서 짝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문은 짝도 없는 작은 외닫이 격자문으로 태어났을까. 할머니는 그래도 이 문을 무척 아꼈다. 

 햇빛이 비치는 봄이 되면 할머니는 항상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창호지를 바르셨다. 마루가 있는 쪽의 때가 별로 타지 않은 양문여닫이는 안 하더라도, 축담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은 소창같이 깨끗하고 하얀 창호지를 바른다. 그 일은 보기보다 쉽지가 않았다. 먼저 마당부터 깨끗이 쓸고 난 후에 가마부석에서 데운 물을 떠온다. 사랑채 경첩에서 문을 떼어내어 비스듬히 걸쳐놓고 문짝의 종이를 손으로 떼어낸다. 그리고 온수를 자꾸 격자문에 끼얹어서 남은 종이를 불린다. 칼로 살살 긁기도 하고 수세미로 밀기도 하면서 남김없이 떼어낸다. 종이만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격자 살 사이에 묻은 거미줄이나 먼지로 인한 얼룩진 땟국도 깨끗이 닦아낸다. 부러진 문살은 철사로 꽁꽁 매어 고정시켰다. 두 장의 창호지로 단풍잎을 넣거나 유리로 밖을 보는 뙤창을 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가 하시는 걸 보고 힘든 일이라 생각했다.

 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손자들이 손가락으로 자주 구멍을 뚫자 드디어 할머니는 하얀 천을 풀에 주물러 창호지 대신 문에 붙였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을 수 없는 못하는 질긴 천은 우리에 대한 할머니 마음 같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처음 귀밑머리를 푼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혼인을 약속해놓고 1년 후에 혼례를 올리고 시집을 갔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신행을 기다리는 동안에 신랑 될 사람이 병으로 급사했다. 두 번째는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할머니는 또 공이를 잃은 절구 신세가 되었다. 할머니의 일생은 떼에 절고 구멍이 뚫리고 문살이 부러지는 외 문짝처럼 고행의 역정이었다. 그러다가 예닐곱 살 된 막내고모를 데리고 사남매를 둔 홀아비인 할아버지께 왔다.

 할머니도 양모 아래서 컸다. 새로운 인연으로 만난 자식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그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억척으로 일만 하였다. 시름을 일로 잊으려는 사람처럼. 그런 할머니를 동네사람들이 일 찌끼미라고 불렀다. 아마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나신 모양이다.

 외닫이문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그림자만 보고 살았다. 사랑채 방에 붙어 마주보는 양문 격자문을 평생 쳐다보기만 하며 살아야했다. 방만큼의 거리를 두고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루 쪽의 문보다 한 짝뿐인 문으로만 기를 쓰고 들락거렸다. 뒷마당으로 가는 양문보다 큰 마당에서 들어가는 외닫이를 우리나 동네사람들도 더 편안해했다.

 마지막을 같이 했음에도 할머니는 초혼이 아니라는 처지 때문에 할아버지와 먼저 가서 기다리는 또 다른 할머니의 합장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동백기름을 발라 참빗으로 머릴 빗고 은비녀를 꽂는 쪽진 머리를 돌아가실 때까지 고수하였다. 쪽진 머리를 바꾸지 않듯이 외닫이 격자문도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 사랑채 문틀뿐이라는 듯이 힘껏 쥐고 있었다.

 인생은 잘 견디는 사람에게 더 큰 시련을 가져다주는 가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의 업보 같은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같이 살던 맏며느리를 덜컥 병으로 잃고 어린 손자 손녀 사남매를 거두어 키워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운명은 할머니가 팔순이 넘어서까지 환갑이 넘은 작은 아들을 술병으로 먼저 데리고 갔다.

 뼈대로만 버티던 사랑채가 포크 레인의 힘을 못 이기고 결국 쓰러졌다. 오래 가나 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아래채는 언제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땅에 묻혀 버렸다. 지금은 잡초만 하늘에 닿을 듯 무성하다.

 이승에서 혼자였던 외닫이 문은 저승에서도 양문여닫이로 인해 감히 그 옆은 생각도 못하였다. 한 가지 남은 소망은 평생 당신이 일군 뒤깍단 밭에 묻혀 있는 손자와 아들 곁에라도 가는 것이었다. 그 밭마저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마음 저린 손자손녀들의 뜻으로 가루로나마 뿌려졌다. 손자의 손으로 나뭇가지와 잎 새에 내려앉았지만, 때마침 내린 비에 씻긴 할머니 몸은 밭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우리를 키울 때 힘든 외닫이였지만 그래도 행복하였는지, 병원에 있을 때 자주 그때 말만 되풀이 하던 할머니였다. ‘손자, 손자 내손자야 천금 같은 내손자야, 금을 준들 너를 사고 은을 준들 너를 사랴’ 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잡고 노래 부르던 할머니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자고가라는 것을 다음이 또 있겠지 하고 손을 놓고 나올 때 기대하는 듯한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이 사무친다.

 격자살의 문양처럼 할머니는 방향을 바꿀지언정 삶의 뜻을 꺾지 않았다.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서도 다른 길은 가려 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혹 같은 아들, 손자 손녀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임무보다 더한 오로지 키워내고 말리라 는 집념만 있었다.

 문을 가져왔다. 깨끗이 씻어서 좋은 볕에 말린 다음 거실 벽에 걸어두었다. 외닫이 격자문을 할머니 보듯 하려 한다. 우리에게 다정했던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다. 짝 없이 쓸쓸한 외닫이 문으로 일생을 마쳤지만, 기억하는 손자손녀가 있어 할머니는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운명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냈던 할머니의 끈기를 닮고 싶다. 액자 틀 같은 문 속에서 웃으시는 내 할머니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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