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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평론> 윤오영의 《수필문학 입문》이 주는 의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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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평론> 윤오영의 《수필문학 입문》이 주는 의미

소금인형 2010. 4. 20. 13:35

  한국 문단에 새로 등록되는 작가의 수는 해마다 증가일로에 있다. 우리 수필계의 사정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일까? 워낙 많은 경우의 글들이 소개되다보니 이젠 소재빈곤의 현상마저 보인다. 각 계층 간의 시각차를 통해 전개되던 다양한 글의 패턴은 무너지고, 단순한 일상을 표현한 잡문 형식의 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의 징후들로 문장력보다는 겪었던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해내면 되는 비 전문문예지의 글들과도 닮은, 어정쩡한 작품들의 유난한 현상을 들 수 있겠다. 그럼에도 수필계의 평론 기능은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준다. 수많은 문예지를 통해 쏟아내는 많은 작품들에 대한 자체 검증이 소홀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오래 방치될수록 작가의식의 부재는 계속되고 전문 독자층의 감식(鑑識)에서조차 벗어날 위험이 있다. 종국에는 수필 관련 잡지들은 수필가만 양산시켰을 뿐, 수필가의 질적 성장은 돕지 않았다는 편견까지 유발시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관점의 추론도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사상으로 승화해 낼 수 있는 사색적 소양과 그 유추된 의미를 문학의 가치로 구현해 내야하는 작가의 본분이 우선이라는 명제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먼저취할 행동인가를 냉정히 따져보게 된다.

이런 갈등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나는 윤오영에게서 찾았다. 그는 일찍부터 수필계의 여러 문제점을 파악해서 이미 그 해결책을 제시해놓은 선각자중의 한 분이다. 단편적 문장론이나 문학적 수사론(修辭論)에 그치고 마는 이론들은 경계하면서 무엇보다 작가라면 참다운 작품으로 승부할 줄 알아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저서《수필문학 입문》(관동출판사, 1975)은 불완전한 수필가의 마음가짐서(書)로서는 제격이다. 지금 당면해 있는 우리수필계의 현황과 결부시켜보았을 때 이 책에 담겨있는 쟁점들은 매우 의의가 클 것 같다. 그리고 그는〈방망이 깎던 노인〉,〈마고자〉,〈양잠설〉등등 헤아릴 수 없는 우수한 창작품을 발표했던 작가이기도하다. 직접 작품 활동을 병행하면서 문학 수필론 까지 정립시킨 그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태도는 수필인의 귀감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수필에 관한 이론과 창작관을 살펴보고자한다.

 

  한국의 현대문학사에 유사개념은 있었으나 수필이란 장르의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924년에 창간된《영대(靈臺)》지에 실린 이광수의 연재수필을 효시로 보는 이도 있고, 1924년 발간된《폐허(廢墟)》에 실린 <단상(斷想)>이란 작품이었다고 반박하는 연구가도 있다. 그 의견들은 엇갈리지만 이유식이 그의 글 <수필 명칭 정착과정 고>를 통해 밝혔듯이 “1926년에 창간된《문예시대(文藝時代)》제1호에는 수필 명칭의 작품들이 무려 33편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해본다면 근대문학에 수필이란 개념이 제대로 뿌리를 내린 시기는 1924년 이후로 보면 틀림없을 것 같다. 후술(後沭)로 언급하겠지만 그 유명한 김광섭의 <수필문학 소고>가《文學》지에 발표된 것은 1933년이었다. 그 후 수필의 개념적 정의와 명칭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어 왔었으나 확실한 이론을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1960년대에 접어들고부터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는 많은 문학자들이 가세하여 학술적 토의가 진행됐었고, 격론이 가일층 불붙을 시점에서 발표된 윤오영의《수필문학 입문》은 이 모든 논란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50세가 넘어서야 뒤늦게 《현대문학》지에 <측상락(厠上樂)>을 발표하며 수필가로 등단한 윤오영의 등장은 1959년이었다. 양정고보에 재학시절 동아일보 학생문예에 시도 발표하고 서울시내 문학학생회 회장을 맡기도 했었지만 그가 문학의 길을 포기한지 40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글 쓰는 행위는 중단했다하더라도 실지로 그는 많은 양의 독서를 통해 문학의 힘을 비축해온 듯싶다. 그의 3년 후배이며 평생을 서로 아끼는 벗으로 지내온 금아 피천득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밤이면 송강과 노계를 읽고 연암을 숭상하면서 현대 중국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성탄과 노신을 좋아하고 동양철학에 정진하여 사서삼경은 물론 노자 장자도 탐독했다.” 중학생시절 윤오영 덕분에 두보의 시와 낭만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는 금아의 말이고 보면 치옹(痴翁), 또는 동매실주인(桐梅室主人)이라는 호(號)로 불리는 윤오영의 오래된 한학과 문학의 조예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등단 이후 1972년에 창간된《수필문학》(발행인 김승우)지를 통해 수필 이론을 연재하기 시작한 윤오영은 《수필문학입문》을 1975년에 내 놓고, 연이어 1976년에는《수필문학 정선》까지 묶어 명실 공히 이론과 창작을 겸비한 작가로 우뚝 서게 된다. 원형갑이 1974년 7월호《수필문학》에 “수필-문학. 이렇게 친근성 있게 한 줄로 이어보는 것은 처음이며 확실히 이 저자로 하여 나는 수필이 삶의 슬기로 이끌어 친밀감을 빚어낼 수 있는 문학이란 걸 인식한 사람이다.”라는 극찬에 대한 화답만은 아닐지라도 기실 대충 쓴 글들마저 모두 수필이란 이름을 달고나오는 당시 수필계의 풍토에 은근한 반감을 품고 있었던 그로서는 그 명확한 답을 서둘러 제시하고픈 욕심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윤오영이 쓴《수필문학 입문》의 사상은 수필계 곳곳에 스며들며 변혁의 기치를 드높였다. 마침 당시의 수필계 사정과 지금의 시대상은 묘하게도 일치하는 부분이 엿보인다.

 

  일부 국문학자들이 ‘파한집’ ‘백운소설’과 같은 시화잡저류(詩話雜著類)를 우리나라 수필이라고 할 때, 이는 수록이라는 뜻이 될 것이니, 그 기원을 남송 때의 홍매의 ‘용재수필’에서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용재수필’ 자체가 곧 수록(隨錄)이요, 문학작품으로서의 수필은 아니다. 또 고려시대의 패관문학은 설화문학이요, 수필과는 거리가 멀다. ‘계축록’이나 ‘한중록’을 고전 수필이라고 할 때, 그것은 수기(隨記)의 뜻이요, 창작으로서의 수필은 아니다. 일부 평론가들이 수필은 반드시 철학적 깊이나 사색과 관조가 있어야 한다거나, 인생문제, 사회문제 내지 문화비평적 태도가 요구된다고 할 때, 그것은 수상(隨想)이나 수평(隨評)의 뜻이다. 흔히 그 기원을 몽테뉴의 ‘Les Essais' 내지 베이컨의 "The Essays'에서 찾거나, 근래 서구의 평론적 유문(類文)을 머리에 두고 생각하는 듯하나, 그것은 정확하게 말해서 현대수필문학의 본격적인 작품이 아니다.

-윤오영, 《수필문학입문》, p.152

 

  윤오영은 먼저 수필에 대한 정의를 똑바로 세우고자 했다. 현재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수필을 말할 때 흔히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라는 고정 인식에 사로 잡혀있는 이들의 그릇된 관념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여실하다. 중국 남송 때의 홍매(1123-1203)가 쓴 <용재수필’(容齋隨筆)>에 의하면 “그때그때의 뜻에 따라 곧 기록을 했다. 그런데, 이것들은 차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수필이라고 붙였다.” 에 근거한 출전(出典)을 수필의 어원으로 믿는 한, 수필의 개념에 대한 본질은 흐려지고 문학으로의 위상도 세울 수 없다는 우려를 내세운 강력한 반발이었다. 또한 몽테뉴(1533-1592)의《수상록》저자서문의 말 “모두들 이 책에서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별것 아닌 나를 보아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내 결점들이 있는 그대로 나온다. 터놓고 보여줄 수 있는 한도에서 천품 그대로 내 모습을 내놓는다.”라는 내용 그대로 에세이란 본인이 갖고 있는 진실의 독백뿐임을 분명하게 확인시키기도 했다. 결국 수필에는 수록(隨錄), 수상(隨想), 수기(隨記), 수평(隨評) 등의 개념이 개입될 수는 있으나 그 개체 한가지만으로는 절대 수필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윤오영은 ‘수필은 자유로운 산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작품으로서의 산문이라야 한다.’ 고 명백히 밝혔다. 수필의 수많은 물줄기들을 바로 잡아 발원지를 분명하게 하고 지류들을 끌어 모아 문학이라는 큰 강으로 인도한 것이다.

 

  각종 기록적 서술의 일부 속성을 이루고 있는 문학적 표현들은 순문학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장의 규격이나 대구여사(對句麗詞)의 수사나 그런 형식적 기교를 자랑하는 곁가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전자의 문학적 속성만을 독립시키고, 후자의 형식적 기교를 파기하고, 자기의 개성과 인간 본연의 순수의식과 정서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산문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발생을 보게 된 것이니, 수필문학이란 그 발생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여기서만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존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위의 책, p.163

 

  수필을 문학으로 격상시킨 윤오영의 공은 지대하다. 그의 이론이 타당해 보이는 것은 먼저 수필의 개념을 정리하여 글 쓰는 이들에게 수필에 대한 변별력을 찾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필의 주체를 하나의 시의(時宜)에만 묶어 두진 않았다. 아무리 수필 근간의 바탕이 왜곡되어 있고 고루하더라도 근거의 부정이 아니라 혼융(渾融)의 이상을 주창한 것이다. 그에게 새로움이란 해체가 아니라 융화였다. 해체와 융화의 교호(交好) 작용을 통해 새것을 창조해냈을 때 글은 더욱 성숙해지고 다원화된 정신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윤오영이 말하는 본뜻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수필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내용이다.’ 김광섭의 <수필문학소고>에 나오는 이 간단한 정의를 단편적으로만 받아들여 수필을 가볍게 보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수필가 자신조차 그렇게 알고 있을 때는 적이 난감해진다. 적어도 그가 윤오영의 《수필문학 입문》을 접해보았다면 그와는 다른 사유를 할 것이다. 그걸 빗대보자면 이렇다.

교통신호등에 의거하여 지켜질 수 있는 질서란 이미 짜여있는 질서이다. 그러나 그런 질서에만 길들여진다면 간혹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운전자들 간에 갈팡질팡 서로 앞서가려다 더 지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식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무형식에 익숙해지면 다르다. 왼쪽 차량 우선으로 교차한다는, 단순한 원리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거창한 질서에 구속받는 일은 없다. 그런 세상에서 교통신호등이란 형식은 번거롭고 부자연스럽다. 가야할 방향에 방해만 될 뿐이다. 계속 형식을 만들어 가며 또 다른 질서를 강요받는 것은 글, 본연의 자유로움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형식이야말로 선진화된 형식인 것이다. 그것이 윤오영 수필정신의 참뜻일 것이다. 윤오영은 수필의 창조성과 문학성을 곶감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수필은 곶감에 비유될 것이다. 감나무와 고욤나무는 똑 같아 보이지만은 감나무는 감이 열리고 고욤나무에는 고욤이 열린다. 고욤과 감은 별개다. 소설이나 시는 잘못되어도 그 형태로 보아 소설이요 시지. 다른 형태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잡문은 감나무와 고욤나무가 서로 다르듯,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곶감이란 어떤 것인가.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푸른 열매가, 그러나 그 푸른 열매는 풋감이다. 늦은 가을의 풍상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질 때 푸른 하늘 찬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수필이다. 수필의 찬란하고 화려함을 말한다. 그러나 감은 곧 곶감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겨 찬서리 내리는 데서 말려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시설(柿雪)이 거기에 앉는다. 만일 그 감이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생기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 그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접는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이철호, 《수필창작의 이론과 실제》, p.48

 

  그가 일관되게 지켜온 수필의 담론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수필의 주제가 촉발되는 지점을 풋감에 대비시킨다면 마음속에 움트는 특이한 흥분, 가볍게 도취된 채 아주 무심결에 이루어진 집중의 모습과 닮았다. 그 같은 감정을 시발로 하여 삶의 진실 속에 있는 약간의 비의(悲意)들을 들추어내고 감상적 기질을 통어(統御)시키는 자질만으로도 감히, 감의 빛깔을 발갛게 만들 수도 있다. 수필의 탈고를 끝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경험하듯, 작품의 탈고란 겨우 퇴고의 시작일 뿐이다. 거기서 안주하는 작가라면 이름이지 정신은 아닐 것이다. 형태만을 꾸민 아름다움이란 미미한 안정감만 남긴다. 사유는 더 낯설고 아득해지더라도 자신을 도려내듯 한 꺼풀 또 벗겨내야 만이 안개 자욱한 아침 숲을 거닐듯이 고독 속에서도 올연(兀然)한 색다른 느낌을 건네받는 것이다. 가시덤불에 찔리고 발을 헛딛는 위험을 감수하고 돌연 불어오는 냉기의 바람 앞에 움츠려들더라도 꽃의 향기를 예감하는 대지의 품안으로 당당히 걸어가야 한다. 그런 마음의 투석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면 우선 자신에게 떳떳한 작품은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찬 서리를 이겨낸 시설(柿雪)의 확인은 자신의 속을 낱낱이 드러내 보일 때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덜 익었거나 병들지 않았을 때에만이 곶감, 즉 완전한 수필 한 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삶의 영고성쇠에 대한 통찰로 해서 보다 원숙하고 완전해진 정신은 맑은 언어를 얻는다. 그 투명한 빛은 도리어 당분 속에 스며들어 외향적 화려함을 내면의 충일로 뒤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찬란한 기쁨인가?

 

  고전은 공부하고 신간은 섭렵하라

  -윤오영, 《수필문학 입문》, p.233

 

  윤오영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창조란 새롭게 태어나려는 의지와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에 감춰진 힘이기도 하다. 혹은 이 두 곳 모두에 걸쳐 순환의 고리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새로움이란 기존의 편견들을 극복하고 작가 자신이 일궈낸 언어라고 봤을 때, 윤오영은 그 운용의 원리를 일깨워준다. 그것이《수필문학 입문》에 함축된 의미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의 진지한 사념들은 우리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 세워 주고 수필의 세계로 온전히 발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어의 위의(威儀)를 조급히 승인 받는 것 보다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어의 미적거리까지 일러준다. 난 그의 그런 관점에 찬성한다. 글에 대한 평론, 검증 다 필요하겠지만 작가의 소양을 먼저 찾자는 뜻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오영의 수필세계를 일별해보는 것은 수필가 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고 문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양분을 줄 것이다. 작가적 투혼과 그리고 확고한 지식에 의거한 그의 수필론은 수필문학의 다변화된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 같은 사실을 기화로, 수필의 문학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자주 거론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수필문학 입문》, 윤오영 저, 1975년 6월, 관동출판사 간

《수필창작의 이론과 실기》, 이철호 저, 2005년 9월, 정은출판 간

《윤오영의 수필연구》, 최찬희 저, 2006년 6월,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출처 : 에세이스트
글쓴이 : 부명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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