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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수필, 이렇게 써 보자-허창옥 본문

수필읽기

수필, 이렇게 써 보자-허창옥

소금인형 2010. 11. 18. 20:01

수필, 이렇게 써 보자

 

 

                 허창옥

 

 

길 떠나기 그리고 걷기

 

 

오리무중

 

 수필쓰기는 내게 '길'이란 단 한 글자로 압축된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막막한 길의 이미지가 나의 수필쓰기이다. 물론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쉽게라니, 당치도 않다. 충분히 생각한 끝에 길을 나섰다. 행장도 제법 야무지게 꾸렸다. 잘 쓰기보다 치열하게 쓰고 싶엇다. 수필쓰기를 통해서 존재하고자 했고 깊어지고 싶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길을 나섰고 제법 걸었다. 하지만 내 신발은 아직도 새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딘가에 닿아서 무언가를 가질 수 있기를 너무 열망한 나머지 언제나 마음이 저만치 앞질러 간다. 신발이 너덜너덜하도록 걸어야 무언가가 보일 텐데, 다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영혼까지 저미게 아파야 어딘가에 닿을 텐데, 그것이 산봉우리이든 골짜기이든.

 수필공부를 한다던 어떤 이가 말했다. 수필 쓰는 법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고,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이론을 꿰뚫고 있는 것과 창작을 잘 하는 것은 별개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창작에 들어가면 그 앎이란 실로 얄팍한 것이 되고 만다는 걸 저리게 깨닫는 게다. 오늘의 테마가 바로 그렇다. '수필' 이렇게 써 보자에 답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하여 수필, 수필쓰기란 명제를 두고 다만 나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길 떠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걷고는 있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오리무중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대답을 궁구하고자 한다.

 

 


만나기

 

 

 온갖 것에 마음이 빼앗긴다. 풀꽃이며 나무들, 사람과 사물, 풍경과 현상들에 시선이 가고 마음이 묶인다. 모든 유형무형의 형체와 이미지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고결한 가치들과 냄새나는 부조리들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모든 것에 시선이 가닿고 머문다. 그러니까 소재는 지천으로 깔려있는 게다. 언제 어디서든 (글)이삭을 줍겠다고 (연필)자루를 거머쥐고 다닌다. 그렇게 습관이 되어있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있다,
 주워 담기에 급급해서 대상을 그 자체로 아름다이 바라보거나, 가슴 미어지게 아파하는 순수를 잃은 게다. 아무 것도 가져오지않아도 좋으니, 글이 되지 않아도 그만이니, 고운 것은 고운 그대로, 아픈 곳은 진정 아파하며 바라보기만 하자. 보고 느끼곤 가슴 한켠에 묻어두자. 글감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걸 경계하자. 소재 중독에 걸려서 소재 금단현상을 겪으면서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곤 한다.

 소재에 관한한 무심, 무위에 이르고 싶다. 그러다가 어떤 영상이 아득한 날의 사랑처럼 불현듯 떠오를 때, 그 떠오르는 것이 가슴에 불을 댕길 때, 비로소 그것을 소재로 맞아들이자. 쉽게 취해서 겉모양만 겨우 갖춘 글을 빚어내서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던가. 마음에 차지 않는 도자기는 망설임 없이 깨뜨려버리는 도공의 장인정신이 내게 결여되어있다-저문 강에서 먹이를 찾고있는 새를 보다.

 

 


정들이기

 


 찔레꽃을 쓰기 위해 세 번의 봄을 기다리고, 겨울호수가 글감이면 칼바람 부는 못가에 적어도 네댓 번은 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각각 다른 시각에 여러 각도에서 보고, 또 보노라면 대상이 자연스레 가슴으로 들어와 머물지 않겠는가. 그것이 가져다주는 울림이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며, 서서 볼 때와 앉아서 볼 때가 다르지 않을까. 그렇듯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나 사물, 풍경과 현상에 정을 들이자. 그에게 말을 걸자. 눈 맞추기를 하자. 그 눈빛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그에게 묻지 않고, 그의 응답을 듣지 않고 어찌 그를 안다고 하랴.
 그러노라면 정이 깊어지겠지. 충분히 정이 들어서 이제는 그를 더 이상 바깥에 세워 둘 수 없을 때 그룰 수필에 초대하자. 마음을 다하여 그의 모습을, 대상의 함의를 글 속에 담자. 그에 대한 최상의 대접은 그가 내 작품 속에 이질감 없이 온전히 녹아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색채(노란 민들레, 붉은 노을)와 소리(물소리, 새소리)가 다 의미를 가져야 한다. 모든 소재, 색채와 음향 어느 것도 무의식적인 것은 없다. 글 전체와 유기적 관계, 놓인 이유가 있아> 고 하였다. 내 글에 초대한 빛깔 하나도 소홀한 대접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고 하여 대상을 터무니없이 과대포장하면 곤란하다. 어울리지 않는 리본을 달고 색칠을 해대서 정작 그가 누구인지, 그를 통해 드러내고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모호하게 하지는 않았던가.-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강가에 나가서 한 마리, 두 마리 여러 마리의 새들을 보다.

 

 

 사유하기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서 정이 든 대상, 또는 글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다. 읽어 낸 의미는 인간의 삶과 어떤 유기적 관게에 놓인 것인가. 삶아도 보고 푹 고아도 보아야 하는데 날것인 채로 겉절이를 하거나 기껏해야 데치기만 하여 내어놓지 않았던가. 몇 개월, 몇 년을 묻어두고 숙성시켜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깊은 맛을 내야하는데......,,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다음 날 그 주마간산으로 기행수필을 쓰고, 오전에 맞닥뜨린 사건이 혀끝만 찔러도 오후에 글로 옮기지 않았던가. 왜 그랬을까.

 천착이다. 천착을 수필쓰기의 으뜸가는 미덕으로 삼아야한다고 스스로 채근해왔다. 그럼에도 늘 조급함이 천착이라는 미덕을 앞질러서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내놓곤 한다. 대체 조급햐야할 까닭이 무엇이가. -조각전에서 작품 <여행>을 보다. 청동으로 조작한 비상 직전의 역동적인 새의 형상이다.

 

 


빚어내기

 

 지나간 시간의 영상들을 현재로 불러 모아서 재배치, 재구성을 한다. 시점(時點) 시점(視點)을 생각하고, 줄거리의 순서를 요량한다. 실시간으로 쓰지 않는 이상 작위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단락을 잇는 연결고리는 탄탄한가. 글의 결정이 내 삶 또는 모두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는가에 대한 해석은 이미 이루어져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진솔한가에 대한 성찰을 거쳐야 한다.
 그리하여 쓴다. 가슴으로 쓰고 머리로 쓰고 끈질기게 앉아서 엉덩이로 쓴다. 오랜 사유를 거쳐서 글의 구조가 머리 속에 또렷이 들어있으면 어렵지 않게 써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종종 글줄을 잇지 못해 멈칫거리고, 그러다가 실타래처럼 엉켜서 더 나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글은 처음의 의도에서 빗나가 엉뚱한 결미에 이르게 되고 만다. 당연히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리된 이유가 무엇인가.
 육화와 천착이 미흡하였다. 낲설게 보고, 새겨듣지 않았으며, 새로 난 길로 접근하지 않았다. 마음의 기록 더 나아가 영혼의 기록이 되기를 열망했건만 그에 맞갖은 진정성이 결여되었다. -새, 일상과 이상으로 묶어보다. 실패다.

 

 


오리무중인 채로


 수필문학은 변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그에 관한 제언들이 계속되고 있다. '낯설게 하기'란 다소 낯설었던 말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만큼 들었다. 수필문학은 이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퓨전수필, 메타수필, 이런저런 실험수필들로 장르의 영역확장과 다양성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수필문학에 있는 게 아니라 수필가인 나에게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추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적잖이 짓눌리고 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산이 있고 골짜기가 있으니 오르지 못해 주저앉고 뛰어넘지 못해 무너지면서 창작의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창작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럼에도 걸어야 한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한다. 앞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길이 보는 것도 아니다. 오리무중인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무엇보다 치열하게 걷자.

 

 

허창옥/ 대구가톨릭대하교 약대졸업. 월간에세이 등단(1990), 한국문협, 수필문우회, 대구수필가협회회원, 수필집<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길> , <먼 곳 또는 섬>, <국화꽃 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