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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구성의 두 가지 사례
김규련
非無非有의 멋
수필은 본 대로 느낀 대로 아무나 쓸 수 있다고 한다. 수필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수필문학의 출현과 동시에 있어온 것 같다. 김진섭은 수필을 ‘산만(散漫)과 무질서(無秩序)의 무형식(無形式)을 그 특징으로 삼고 스스로 느끼고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면 되는 것’이라 하고, 김광섭은 ‘한가로운 심경에서 시필(試筆) 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피천득은 ‘쓰는 이의 독특한 기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써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세상에는 수필작품도 많고 수필인도 많다. 수필의 소재 또한 다양하고 그 형식은 각양각색이다. 더러는 도저히 수필이라고 이름 할수 없는 저속한 잡문들이 신문 잡지의 수필 난을 메워 나오기도 한다.
허나 막상 수필을 수필답게 써보려고 하면, 수필처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수필창작에는 이렇다할 특정형식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붓 가는 대로 쓴다고 해서 수필다운 수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수필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작가가 어떤 소재를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심미적인 가치와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우선 언어로 형상화 되어야 한다. 형상화된 언어의 구조물 속에는 주제의식이 아는 듯 모르는 듯 함축되어 은은히 깔려 있어야 하고, 그것이 독자의 가슴에 가 닿아 그들의 심혼을 흔들어 놓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이 창작됐다고 볼 수 있다.
윤오영은 그의 수필작법에서 수필은 ‘소설로 쓴 시가 아니면 시로 쓴 철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수필은 산문이면서도 시적 분위기가 있어야 하고, 시적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철학적인 사상이 숨어 있어야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필은 어디까지나 수필이지 시나 소설이나 철학이 될 수는 없다.
시가 형태적이고 상징적이고 토로적 가창적이면서 언어로 미를 추구하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비형태적이고 대비적이고 서술적이고 설화적이면서 의미로 미를 추구하는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은 허구적인 것을 내용으로 발단, 절정, 극적 전환 등 구성형식이 있는 점에서 구성형식이 창의적이고 자유롭고 내용이 허구가 아닌 수필과 다르다. 철학이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수필은 진실의 독백을 서술하는 문학이라고 할까.
수필창작에서는 우선 감정과 생각을 담을 어휘를 찾아야 하고 그것들을 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수필다운 수필을 창작하자면 어휘의 발굴과 문자의 형성과정에서부터 고뇌와 아픔을 겪기 시작한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다보면 적합한 어휘의 발굴도, 정확한 뜻이 담긴 문장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문장을 모아 단락을 만들고, 단락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어 낼 때 그것들의 배열과 조직에는 강한 주제정신이 작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머리 속에서 이미 구상해 온 그 작품 구성에 대한 어떤 형식 같은 것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그것들을 조화롭고 유기적이고 생명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구조화할 수가 없다.
머리 속에서 이미 구상해 온 어떤 형식, 이것을 무형식의 형식이라 할까. 어쩌면 이것이 가장 아픔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형식의 창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형식은 소재와 주제에 따라, 또는 작가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또는 그때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력을 발휘해서 다양하게 창작해낼 수가 있다. 따라서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 아니고 그 형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 非無非有의 경지에 있는 멋있는 문학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구성 형식의 두 가지 사례
최근에 수필문단에서는 수필구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나의 경우 수필 구성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을 근거로 작품 창작을 해본 경험은 없다. 다만 소재를 보고 느낀 온갖 감정과 많은 생각들을 주제에 비추어 걸러내고 보완해서 마침내 언어에 담아 서술할 때 한 작품으로서의 큰 틀을 생각해보고 그 틀 속에서 내재할 요소들의 배열과 조직, 시제의 순역 등을 미리 구상해 볼 뿐이다.
이 경우 나에겐 일정한 형식이 없다. 따라서 그때의 소재와 주제에 따라 소설구성의 형식인 발단, 전개, 절정, 극적 전환을 다양하게 변화시켜서 활용해 본다. 또 때로는 시문의 격식인 기승전결을 전용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논문의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적절히 바꿔서 이용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그야말로 내 나름의 생각에 따라 틀을 짜볼 때도 있다. 아무튼 나는 작품 구성에 대한 구상이 끝나면 그 틀을 메모지에 요약해 두고 비로소 끙끙거리며 원고지를 메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수필의 구성이란 서술의 순서요, 사실을 진실로 승화시키는 미적 여과과정이요, 결과적으로는 한 작품의 큰 틀이요, 그 틀 속에 짜여진 서정과 생각의 배열과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창작한 필자의 졸작<감나무에 달린 잎새들>의 구성은 시문의 기승전결을 응용해 봤다.
起에서는 사무실 앞에 거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와 나와의 만남, 감나무의 모양새, 철따라 극명하게 변하는 감나무의 모습과 의미, 감나무에 얽힌 옛추억, 감나무와 다른 나무들과의 대비, 그리고 관계... 이런 것들로 문단을 메꿨다.
勝에서는 심안으로 감나무와 그 주변의 자연현상을 통찰하면서 수액의 도는 모습, 감나무를 돌아나오는 수분의 대여로와 거기서 명멸한 수많은 생명체, 감나무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 숨어있는 온갖 목소리, 감나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실상, 자연의 실상에서 엿 볼 수 있는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의 도가사상(道家思想)과‘一郞 一切一郞一'의 (華嚴思想)에 관한 편린...이런 생각들을 서술해 봤다.
轉에서는 현실로 돌아와 인간의 위선과 허위, 탐욕과 오만. 인격의 이중구조에서 노정되어 나오는 행동양식, 마침내 이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사실.... 이런 내용으로 채웠다.
結에서는 솔직한 자기 성찰과 삶의 진실, 이를 위한 선과 기도, 감나무는 어느덧 내 앞에 거룩한 말씀으로 서 있다는 말로 끝맺음했다.
작품의 제목인 <감나무에 달린 잎새들>든 화엄사상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실상을 나름대로 통찰해보고 인간 삶의 진실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데 그 주제가 숨어 있다.
나의 졸작<거룩한 본능>의 구성에서는 서두, 본체(본체는 발단,전개, 절정, 극적 전환...소설적 구성),결미의 형식을 구상해 봤다.
서두에서는 산골로 찾아드는 길섶의 자연을 그렸다. 독자의 마음이 자연으로 돌아가 깨끗이 세척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본체에서 전개될 아름다운 태백산맥의 자연과 순박한 화전민의 삶, 그리고 비극적인 황새의 사랑과 파괴돼 가는 인간성의 문제..., 이런 것들을 순수하게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본체에서는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자연과 화전민, 황새 한 쌍과 밀렵꾼... ,이들의 관계와 비극적인 사건의 발단을 소설적인 형식으로 묘사해 봤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이 심화돼 가는 과정을 계절의 변화와 연관시키면서 극적인 표현에 힘을 써왔다.
결미에서는 외곬으로 치닫는 물질문명, 타락해 가는 인간윤리, 고갈돼가는 순수감성, 무너져 가는 인간성..., 이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은근히 기원해 봤다.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런 놈들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이 이 작품의 끝맺음이다. 작품의 주제는 드러나지 않게 함축해서 문장의 분위기 속에 깔아뒀다. 굳이 밝힌다면 파괴돼 가는 인간성의 회복이라 할까. 어쩌면 냉혹한 물질문명의 극복과 타락한 인간윤리의 재건일지도 모른다.
*김규련(1929~) 경남 하동출생 전 경북교육원연수원장.포항여고 교장.<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협, 국제펜클럽 회원.영남수필문학회장 역임. 작품집<강마을><거룩한 본능> <횡성 수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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