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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음표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투명음표

소금인형 2011. 11. 4. 23:14

 

투명음표/ 이미경

 

음표에는 여백이 숨어있다. 나는 그것을 투명음표라 부른다.

다섯줄의 평행선위에 사람머리 같은 음표가 오르락내리락 찍혀있다. 가사가 없는 멜로디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같은 음에 8분 음표 여섯 개가 나란히 있는 마디를 들여다본다. 음표머리위에 스타카토 표시를 해놓았다. 모르긴 해도 의성어의 기호 같다. 규칙적이되 음의 높낮이가 없는 소리일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떠올려 보기도하고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달리는 말발굽소리를 떠 올려 보다가 몇 마디를 건너뛴다. 이번 마디는 음표가 음계를 따라 오르고 있다. 16분 음표가 음계를 오르는걸 봐서 빠르게 질주하는 모양새다. 야생당나귀가 달리는 모습을 그려보다가 비상하는 새의 날개소리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음악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다양한 소재를 음표로 사용한 멜로디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에 대한 갈증을 느낀 적도 없다. 오히려 가사 없는 악보를 들여다보며 나만이 갖는 상상의 세계를 즐긴다.

사람들은 말이나 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글이나 말은 상황을 설명해 버리기 때문에 대부분 나의 상상력에 제한을 준다. 가끔씩 상대방 의중을 파악하기위해 말의 파롤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멜로디가 주는 상상력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악보는 음악의 곡조를 일정한 기호를 써서 기록한 것을 말한다.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과 비교한다면 랑그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악보에는 규칙이 있다. 한 미디안에 똑같은 수의 박자가 들어가야 한다. 굵고 짧게 살겠다는 듯 온음표 하나로 박자수를 채운 것도 있고 길고 가늘게 16분 음표 16개로 채워진 마디도 있다. 온음표 하나로 채워진 마디는 뚝심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 듬직하고 16분 음표로 채원 진 마디에서는 늘 바쁘게 사는 친구를 보는 것 같아 경쾌하다. 게으르게 온 쉼표 하나가 그려진 마디도 보인다. 될 대로 되라는 듯 모자를 거꾸로 걸쳐놓은 모양새다. 어린왕자가 세 번째 별에서 만난 술꾼이 걸쳐 놓은 모자가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그는 오늘도 자기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모자를 걸쳐 놓은 채 다시 술을 마시러 간 모양이다.

음표는 셋째 줄을 기준으로 하여 그보다 낮은 음은 머리의 오른쪽 위로 기둥을 세우고, 그보다 높은 음은 머리의 왼쪽으로 기둥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원칙대로만 돌아가면 편안이야 하겠지만 재미는 덜할 것이다. 융통성과 포용력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팍팍하던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악보의 원칙에도 숨구멍 같은 게 보인다. 셋째 줄의 음만 기둥의 위치가 자유롭다. 눈에 뛸 듯 말 듯 한 작은 변화가 시각적으로 악보를 풍성하게 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제멋대로의 변화가 아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음표의 위치에 따라 기둥의 위치가 달라졌다. 원칙은 지키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여백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여백은 무언가를 품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다.

몇 달 전 보컬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보컬을 배우겠다며 등록한 아들이 한두 번 학원에 가더니 시간이 없다며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 나머지 학원비를 받아오라는 말을 한지가 꽤 지났건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아들 대신 학원비를 돌려받으러 갔다가 덜컥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발성연습으로 시작한 보컬수업은 몇 주 뒤부터는 음의 높이를 정확히 읽는 수업을 시작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내어 보지만 제 음이 정확히 나지 않는지 보컬선생님은 ‘다시’를 연발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일쑤였다. 악보의 정확한 소리를 내는 일이 세상을 살면서 제 위치를 찾는 것만큼 힘이 들었다. 그렇게 몇 주를 연습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에 들어갔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짚으며 노래를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녹음된 노래는 보컬 수업을 받기 전 보다 못하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악보를 보면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서야 알았다. 원인은 박자였다. 나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과 박자에만 신경쓰다보니 딱딱하고 지루하게 들렸다. 반면 가수의 노래는 음정과 박자에 여백의 박자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박자에 자연스러운 강약을 주기도하고, 감정에 따라서 박자의 길이를 조금 짧게 부르거나 조금 길게 부르는 여백의 박자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내 삶의 악보를 들여다본다. 음표가 오르락내리락 그려져 있다. 어떤 마디에는 같은 음에 불안정한 음표가 그려져 있고 또 어떤 마디에는 음계의 차이가 커서 고음 불가의 상황이다. 음의 고비 고비에 투명음표를 슬쩍 그려 넣어본다. 흔들렸던 음표가 안정이 되고 고음도 훨씬 부드럽게 넘어간다. 잘 산다는 의미가 투명음표를 잘 활 활용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리듯 삶 또한 여백을 어떻게 채색하느냐에 따라서 미학적으로 연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의 수필 7집 

 

이미경- 호 松栽,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수필세계 신인상 수상

제1회 프런티어문학상 우수상

수필사랑 문학회 회원

수필세계 작가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대구수필가협회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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