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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미끼

소금인형 2012. 9. 16. 21:22

 

미끼/ 이미경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남우세스러울 뻔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부는걸 보았다면 모르긴 해도 배를 잡고 뒹굴었을 게다.

친구에게서 방금 전 문자가 왔었다. 화면속의 촛불을 입으로 불어보라 했다. 신기하게도 꺼진다는 것이다. 화면 속 촛불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입김을 약간만 불어도 꺼질 듯 하늘하늘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더니 이렇게 신기한 것이 있나 싶었다. 혁신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휴대폰을 훅 불었다. 쉽게 꺼질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었다. 입김이 약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세게 훅 불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친구에게서 문자가 다시 왔다. “너 설마 진짜 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모니터 먼지만 턴 꼴이 되었다. 졸지에 친구가 던지 장난 미끼에 낚인 물고기 꼴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나온 벌금고지서를 받고서도 남편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만든 미끼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고지서를 치웠고 남편은 슬며시 베란다로 나갔다. 거실로 새어드는 담배연기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 놓았던 그날이 의식의 세계로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맑은 하늘이 비친 바다는 하늘 호수 같았다. 잔잔히 흐르는 해류에 흔들리는 작은 배는 요람보다도 더 편해서 나른하기까지 했다. 바다와 깔깔거리며 부서지는 햇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물고기들은 덥석덥석 미끼를 잘도 물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물고기의 입질이 짜릿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어리석어 보여 고기가 잘 문다는 말로 부러움을 대신했다.

잔잔히 흐르는 바다위에는 몇 척의 고깃배가 떠있었다. 배위의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물고기가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면 미끼가 아니라도 그 표정에 절로 즐거워져 따라올 것 같았다. 함성이 들렸다. 남편이 대어를 낚은 것 같다고 했다. 낚싯줄을 풀었다 감았다하는 남편의 얼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주위의 몇 사람은 하던 낚시질을 멈추고 뜰채를 가져 오기도 하고 감아라 풀어라 훈수에 열을 올렸다. 물고기는 미끼가 달린 줄이라도 끊을 자세로 퍼덕거렸다. 기진맥진한 물고기를 뜰채로 들어 올렸을 때는 남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배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잡은 고기로 회를 치고 술잔이 돌았다. 안주감이 좋으면 잘 취하지도 않는다며 여러 종류의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불콰해진 얼굴로 다시 낚싯대를 내렸을 때는 조황이 좋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에 변하는 것은 바다 속도 삶과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선주는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다시 낚싯대를 들어 올리니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여태 한 마리밖에 못 잡은 친구가 황금미끼라도 쓰냐며 볼멘 목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미끼의 종류는 다양했다. 미꾸라지를 미끼로 쓰는 사람, 오징어를 쓰는 사람, 갯지렁이, 새우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어종에 따라 좋아하는 미끼를 쓰는 모양이었다.

내가 쓰는 미끼로 바꾼 친구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다. 영리한 고기가 미끼만 먹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삶이 이별을 향한 긴 여정이듯 하늘호수의 축제도 끝날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라도 한 듯 잡은 고기로 회를 치고 남은 술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붉은 하늘빛을 바다가 닮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땅을 밟았다.

대리운전사를 부르자는 내말에 남편은 술이 거의 다 깼다며 괜찮다고 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좋으련만 술이 워낙 약한 탓에 운전대를 잡을 상황이 안 되었다. 몇 분 동안 남편과 승강이를 벌였다. 그때 남편 친구가 자기가 조수석에 타고 가고 앞차가 상황을 알려주면 된다며 나를 설득했다. 잘 아는 경찰 형님이 이곳의 높은 간부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차가 출발을 했다. 간간히 도로상황이 전화로 전해졌다. 그러다 뜸하기에 마음을 놓고 한 동안 달렸다. 커브를 도는 순간 경찰이 보였다. 차를 세우라는 신호가 왔다. 사실 앞차도 음주운전인지라 연락할 틈도 없이 도망가기에 바빴던 것이다.

남편은 음주측정을 거부했고 우리는 경찰서로 가야만했다. 한풀 꺾인 남편은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남편친구도 선처를 호소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경찰서장이 나를 불렀다. 지금은 음주단속기간이라 어떤 방법도 없으니 남편을 설득하라고 했다. 여기저기 전화 해봤자 소문만 나서 남편에게 좋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선처를 빌고 있는 남편이 그렇게 작아 보일수가 없었다. 다가가서 그냥 음주측정을 하자는 말에 남편의 눈이 싸늘해졌다. 옆에서 같이 선처를 호소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말을 한다며 역정을 내었다.

결국 음전운전에 음주측정거부까지 더해져서 벌금이 엄청나왔다. 뒤에 안 일이지만 경찰이 우리차를 세운 것은 남편친구 때문이었다. 조수석에서 꼬꾸라져 잠든 모습이 영락없이 취한 사람의 모습이니 경찰의 직감으로 운전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바다 속은 날마다 고기를 잡기위해 사람들이 던지는 미끼로 가득하다. 순진한 물고기에게는 미끼란 매력적일 뿐 뒤에 가려진 날카로운 바늘과 포악한 이빨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영리한 고기들은 사람들이 던지는 미끼의 특징을 파악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지만 미끼라는 것이 워낙 유혹적이어 제 정신이 들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도 미끼에 걸려 우는 이야기들이 신문지위를 날마다 떠도는지라 조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미끼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미끼를 만든다. 그 미끼는 발견하기가 더 힘들다. 남편과 나는 스스로 만든 요행과 설마라는 미끼를 덥석 문 까닭에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었다.

바다 속 보다 더 많은 미끼가 떠다니는 삶의 여울에서 과학의 진화를 맹목적으로 믿은 나는 오늘도 친구의 장난 미끼에 걸렸다. 미끼만 먹고 도망친 물고기가 되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시치미를 딱 떼며 친구에게 답장메시지를 보낸다.

넌 내가 바보로 보이니?”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2012 가을호 수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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