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요지경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요지경

소금인형 2012. 9. 16. 21:26

 

요지경 /이미경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리분별 할 줄 알던 내가 뭔가에 홀린 듯 허방다리를 종종 짚는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친구는 문자로 좋은 글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요리 레시피를 보내주는데 작은 도움이 되곤 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은 멋진 배경과 함께하는 영상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고 저녁 찬거리가 마땅하게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친구가 보내준 요리메뉴를 보았다. 그날 온 문자는 전자레인지에 관한 정보였는데 내가 전혀 모르던 것이었다.

음식을 삶거나 굽거나 찌는 것은 음식에 열기만 가할 뿐 분자는 바뀌지 않는지만 전자레인지는 음식에 전자파가 가해져 우리 몸에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계속 섭취하면 뇌 기능이 파괴되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르몬 분비가 중지되며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변형되거나 해로운 성분으로 변해 암을 유발하는 괴물질을 만든다고 했다.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자렌지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정말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누구하나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이 뾰족이 고개를 내밀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다양한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것저것 훑어보니 전자레인지 유해성에 대해 여러 과학자가 제시한 근거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었다. 또한,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는 분자 구조를 왜곡시키는 게 아니라 진동을 일으켜 열이 발생하게 하는 것으로써 오히려 몸에 유익하다는 반박의 글도 있었다.

두 가지 의견을 비교해보며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치명적인 사항이므로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검색하는데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반박하는 글 하나가 눈이 들어왔다.

전자파는 전자레인지, 휴대전화에서도 나오지만 자연 상태의 전자파는 더욱 많다.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고 한다면 자연에서의 전자파가 훨씬 해로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결론을 내렸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게 대부분이고 나쁘더라도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대부분이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 인간이 만든 빛으로 물 분자를 움직여 열을 내며 데워진 음식물을 떠올리니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전자레인지는 사용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 친구 몇 명에게 다시 전달했다. 메시지를 받은 친구마다 좋은 정보를 줘서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전자레인지를 없애야 할 것 같았다. 새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며 정이 들어서인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둘째의 아토피 피부염이 떠올랐다. 그것은 어릴 때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데워 먹인 탓이라 생각하니 이제는 미련을 두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전자레인지가 있던 자리에 잎이 푸른 화분이 있는 것을 본 남편이 레인지의 행방을 물었다. 내 말은 들은 남편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는 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전자레인지가 없어진 며칠 동안은 좀 불편하긴 했다. 찜솥에 일일이 찌자니 번거로웠고 씻어야 할 그릇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뽀얀 증기가 폴폴 오를 때면 건강한 에너지가 집안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찜솥에 보리빵을 쪄서 먹으며 무심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전자레인지 괴담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TV에서는 친구가 보내 준 정보가 순 거짓이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전자파가 세균을 죽여 우리 몸에는 더 유익하다 했다.

용수철이 튕겨져 나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전자레인지를 버린 곳으로 뛰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 거둬가니 누가 가져가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참을 쓸 수가 있는 물건이었다. 만약에 없어졌다면 남편에게 뭐라 말하고 새것을 사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시치딱 떼고 내가 수고를 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전자레인지는 먼지를 덮어쓰기는 해서도 그대로 있었다. 나와 같은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버려진 전자레인지가 평소 때 보다 더 많았다.

마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전자레인지를 가져가다가 아는 얼굴이라도 만나면 괜히 부끄러울 것 같았다. 내 물건 내가 가져가면서도 이렇게 주위를 의식하기는 처음이었다.

삶이 준 경험으로 낯선 사람이 하는 말은 한번쯤 의심을 하면서도 익명의 정보들 앞에서는 오늘처럼 무너진다. 시나브로 사람보다는 기계를 더 믿고 의지하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제자리로 돌려놓은 전자레인지를 보며 남편이 씩 웃었다. 아마도 전자레인지 괴담을 알고 있는 듯했다.

참 요지경 속이다. 편리를 위해 기계를 만든 인간들이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으니.

  2014-109 대구문학

 

'소금인형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양연화  (0) 2012.09.16
천생연분  (0) 2012.09.16
줄자  (0) 2012.09.16
미끼  (0) 2012.09.16
화양연화  (0) 201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