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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법/ 이미경
산길을 걷는다. 나란히 걷던 남편의 모습이 조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 까닭이다. 누가 본다면 싸웠느냐는 물음표 눈길을 던지겠지만, 우리 부부의 등산 법이다. 산을 잘 타는 남편과 달리 나는 잘 걷지 못한다. 등산의 목적이 남편은 땀을 흠뻑 내는 것이라면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풀과 꽃을 감상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목적이 다르니 나란히 걷다 보면 어느 한 쪽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각자의 보폭으로 산을 오른다.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온 남편과 천천히 걷는 내가 만나는 곳은 벤치가 있는 숲이다. 어느 날은 정상에서 먼저 내려온 남편이 나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내가 그 곳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천천히 걷지만 쉬지 않고 걷다 보니 어느새 벤치 숲이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면 어김없이 눈길을 끄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누운 나무다. 오래전에 벼락을 맞은 나무라 했다. 맞아도 제대로 맞은 모양인지 비스듬히 기울어진 게 아니라 아주 편히 등을 붙이고 누워 있다.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향하는 것보다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름의 생존 법칙이 있다. 그 법칙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나무의 본능은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향하는 것이니 누워있는 것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지 싶다. 치부처럼 드러난 꺾어진 뿌리가 그날의 충격을 짐작하게 한다. 여렸던 뿌리는 오랜 세월을 견디는 동안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뽑히지 않은 몇 가닥의 뿌리로 질긴 목숨을 연명하는 동안 나무의 둥치는 뿌리가 되어 반은 흙속에 묻혀버렸다. 쓰러진 나무는 살기 위해서 위로만 향하던 나무의 속성을 버렸다. 제 살을 찢으며 땅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뿌리가 된 나무 둥치의 곁가지 몇 개가 하늘을 향하며 튼실한 나무로 자랐다. 원래의 나무기둥은 뿌리가 되고 가지가 나무의 본체가 된 셈이다. 굵고 튼튼한 둥치가 뿌리가 되어 단단히 버티어주니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없는 가장 강한 나무로 다시 일어난 셈이다.
신발을 벗고 벤치 위에 반듯이 앉았다. 남편이 올 때 가지 간단한 요가 운동을 할 생각이다. 두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너무 한다고, 그 여자가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찬다. 모자란 여사가 또 푼수를 떨고 있나보다. 모지란 여사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랑도 아닌 일을 왜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모지란 여사를 만난 것은 삼 년 전이었다. 그날도 나는 정상으로 올라간 남편을 기다리며 벤치에 누워서 간단한 요가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서 벤치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된다는 대답을 하며 요가 동작을 계속했다. 여자는 참 수다스러웠다. 묻지도 않는 자신의 하루 일과와 자신의 이야기를 실타래 풀듯이 주절거렸다.
여자의 신혼은 가방 하나로 시작했지만 행복했었다. 여자가 삼 남매를 순풍순풍 낳는 동안 남편은 부지런히 일해 작은 공장 하나를 차렸단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다방 아가씨와 바람이 났다. 긴긴 날을 남편과 다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여자는 다방 아가씨를 만나 헤어지든지, 자신이 나갈 테니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다방 아가씨는 거절을 했고 남편은 조강지처는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라며 살림을 차렸다. 하루는 두 집을 오가는 남편을 향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비는데 양 볼에 뜨거운 기운이 왔다 갔다 하더니 눈앞에 벼락이 치더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은 저만큼 가고 있고 문고리에 부딪힌 눈은 산만큼 부풀어 올랐다. 다방 아가씨와 남편의 인연은 십일 년이 갔다고 했다. 십일 년이라는 말에 나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일어나 앉았다. 도무지 그 긴 세월을 참고 살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어떻게, 왜 그 세월을 참고 살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여자는 자신은 희생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며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울음인지 웃음이니 모를 표정으로 지금도 경리 아가씨와 바람이 나 있다고 했다.
그 후로도 산에서 모지란 여사를 몇 번 더 보았다. 그때마다 모지란 여사는 사람들 앞에서 희생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으며 하소연하듯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운 나무의 잎들이 싱그럽게 바람에 뒤척인다. 위태한 생을 딛고 얻은 편안을 노래하는 것 같다. 어두웠던 긴 터널을 빠져나온 환희 같다.
불현듯 모지란 여사가 강조하던 희생이라는 것에 의문이 든다. 모지란 여사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여자다. 그렇다고 자기 삶을 다시 개척할 용기도 없다. 벼락 맞고 쓰러진 나무와 같은 처지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분노와 절망을 희생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은 희생이라는 카드였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가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을 자랑처럼 떠드는 거였다.
개구리 자세를 하고 있는데 모지란 여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반듯하게 자란 아들이 곧 결혼 할 것이란다.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며 결혼을 반대하는 남편에게 너나 잘하세요 라고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질렀단다. 그동안 참고만 있던 아들도 그날은 아버지에게 쓴소리를 하더란다. 참고 산 보람이 있다며 모지란 여사가 키득거린다.
세상의 만물은 자기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어리석고 멍청해 보일지라도 나름의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삶의 틀에서 벗어난 각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삶의 이치인 것 같다.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산을 내려갈 때는 남편과 함께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