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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풍장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꽃 풍장

소금인형 2008. 9. 19. 07:20

     꽃 풍장 / 이미경

                                                                      

울고 있을 것이다.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는 슬픔에 엎드려 울고 있을 동생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자신이 없어 기다리던 나는 두어 시간째 절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굵고 녹슨 못에 긁힌 듯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아프지만 놓을 수 없는 상처(傷處), 그 상처 놓는 법을 몰라 동생과 나는 법당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섬처럼 있다.

바람이 분다. 구름처럼 피어있던 매화꽃이 날린다. 나풀거리는 꽃잎을 눈으로 쫓는다. 바람의 길이 보인다. 꽃잎이 허공에서 그리는 길이 바람의 길일 것이다. 원을 그리기도 하고 넌출대기도 한다. 문득 꽃 진자리의 생채기를 생각하다가 다시 법당문을 바라본다. 풀기 없는 봄 햇살이 덩그마니 비추고 있을 뿐 동생의 모습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고인을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염습사의 말이 떨어지자 곡소리는 더욱 커졌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그리 견고한 게 아니었다. 꽃잎이 떨어지듯 움직임을 가만히 놓은 게 죽음이었다. 창 너머 저쪽에 있는 제부는 흔들어 깨우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만 같았다. 염습사가 수의를 입힐 때 꺾이지 않는 관절만이 이쪽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보태어져 삶이 되듯이 죽음 또한 삶이 차곡차곡 쌓이다 멈춰버린 것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울상으로 바라보던 조카가 유리창 너머 움직임이 없는 제 아빠의 모습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동생이 조카를 끌어안았다. 장마철 곰팡이처럼 번식한 슬픔이 염습실을 덮었다. 염습사가 사자(死者)의 식사 시간이라며 곡을 멈출 것을 당부했다. “백 섬이오, 천섬이오, 만 섬이옵니다.”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쌀을 세 번 흘러 넣는 염습사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그리고는 다시 백 냥이오, 천 냥이오, 만냥 이옵니다를 외치며 두루마기 속으로 지폐 석장을 넣었다. 한줌도 안 되는 쌀과 석장의 지폐를 만 섬의 쌀과 만 냥의 돈이라 여기며 제부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눈물 너머로 습신을 신은 제부의 발이 크게 확대되어 들어왔다. 열심히 삶의 흔적을 찍었던 발이었다. 맏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삶이 준 역할에 충실하기위해 쉼 없이 움직였을 발이었다. 또한 의식하고 있지 않는 사이에 조금씩 죽음으로 가는 발이기도 했다. 문득 삶과 죽음이 팽팽한 줄다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은 다만 죽음을 이기고고 있을 뿐이었다. 

파르스름한 종이 신발을 신은 제부를 보니 이승을 곧 빠져 나갈 시간인 것 같아 서러움이 더욱 복받쳤다. 

젊고 건강했던 제부는 그깟 몸살기운 좀 쉬고 나면 툭툭 떨쳐낼 줄 알았었다. 감기 기운이 있다며 일찍 퇴근한 제부는 거실에 누워 TV를 보며 퀴즈 풀이를 하다가 저녁달 이울듯이 삶의 경계를 넘었다. 가는 이야 죽음도 의식 못하고 편안하게 떠났지만 남은 사람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 마흔 살의 제부는 천으로 동여매져 누에고치 같은 모습으로 작별을 고했다.

제부가 떠난 후에도 제부는 동생 곁에 계속 남아 있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동생의 슬픈 그림자로 따라다녔다. 고마웠거나 즐거웠거나, 아니면 더 다정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이 어우러져 슬픔 또는 한(恨)을 만들었다. 자연은 겨울의 채찍을 이겨내고 또 다른 모습으로 서 있지만 동생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흐르지도 못하는 강물이었다. 추억은 편안히 흐르다가 여울을 이루며 흘렀을 테고 때로는 고일 때도 있을 터였다. 동생이 어서 빨리 제자리를 찾아주었으면 했다. 제부와는 더 이상 흐를 수없는 추억들을 인정하길 바랐다.

이곳은 동생네 가족사진의 마지막 배경이 된 곳이다. 동생의 슬픔이 넘치고 넘쳐 평온으로 정화되길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이곳에 동생을 데려왔다.


왁자지껄 지는 꽃들이 아름답다. 꽃들의 윤회가 참 익숙해 보인다. 떨어진 꽃잎이 담 아래  꽃무덤으로 소복이 쌓여있다. 삶 밖으로 튕겨진 꽃잎들이 말갛게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탈색되었는지를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꽃잎을 한 동안 바라본다. 살랑거리는 바람, 나지막한 새소리와 훈훈한 햇살에 풍장 의식을 치루고 있다. 

문득 사람의 가슴에 묻혀 피는 슬픔의 꽃잎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란 죽어서 땅에만 묻히지 않고 사람의 가슴에 살아남은 기억의 흔적이 아닌가.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며 퇴색되어가는 꽃잎처럼 상처도 들여다보고 보듬으며 서서히 묽어지는 것이리라. 나는 한 번도 동생 아파할까 제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슬픔의 꽃잎이 피기도 전에 지기를 바랐다.

햇볕 따뜻한 곳에 쌓인 꽃무덤을 보며 마음의 상처는 지우는 게 아니라 서서히 떠나보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람의 가슴에 깃들여 있는 슬픔도 기억하고 추억하다보면 언젠가는 묻어지고 흘러가게 될 것이다.   

사는 동안 죽음은 다시 기별 없이 다가오고 부고 또한 느닷없이 전해 올 것이다. 죽은 사람은 소멸되어가고 산 사람은 시간에 기억을 풍장 시키며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나는 동생이 있는 법당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2008. 수필세계 가을호 

2016 선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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