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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狼)과 패(狽)-5매 본문

글 소리 판

낭(狼)과 패(狽)-5매

소금인형 2010. 1. 6. 12:28

낭(狼)과 패(狽)/이미경


 

낭(狼)과 패(狽)/이미경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자동문이었다. 사람이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위하여 틔워놓은 곳이 문이건만 제 본분을 잊은 듯하다.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알리바바의 암호가 아니라 전자출입카드다. 아침에 깜박 잊고 그것을 방에 두고 나왔다. 사람보다 결점이 적을지는 몰라도 융통성과 포용력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아량은 사람만의 몫인가 보다.   


경비원을 없애고 자동문으로 교체한지 일주일째다. 경비절감을 이유로 경비 시스템을 바꾸었지만 사실은 사생활보호라는 이유도 한몫을 했을 테였다. 문이 교체되기 전 경비원이 한 통로에 오래 있으면 주민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며 주기적으로 교체시키기도 했으니까. 개인적인 것이면 아주 작은 것도 소통을 원하지 않는 마음이 자동문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닫혀있는 경비실을 바라본다. 가끔은 봄볕에 졸기도하고 주민들의 눈을 피해 술을 홀짝이기도 하던 사람의 정이 그립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낯선 남자 뒤를 바짝 붙어 따라 들어갔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이라도 경비원과 인사를 나누면 주민이라 생각되어 일단 안심이 되었건만 주민이든 아니든 카드만 있으면 출입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니 더 불안하다. 승강기를 타며 남자를 슬쩍 보았다.  사각턱의 남자는 검은 체육복에 모자까지 쓰고 있다. 괜히 불안해진 나는 CC-tv를 바라보았다.

승강기에서 내려서야 현관 열쇠도 전자출입카드와 같이 방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꼼짝없이 갇힌 신세다.


옛날 옛적에 낭(狼)라는 동물과 패(狽)라는 동물이 살고 있었단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게 태어나는 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았다. 그래서 낭과 패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늘 함께 다녀야했다. 그렇게 붙어 다니다가 혹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깔끔하게 경비일을 보지 못했던 낭(狼)같은 경비원이었지만 완벽하지 못한 패(狽)같은 나에게는 적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끼어드는 문명들로 인간들은 어쩌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낭(狼)과 패(狽)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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