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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잎 클로버 본문

소금인형 수필2

다섯 잎 클로버

소금인형 2010. 11. 2. 21:16

다섯 잎 클로버/이미경

 

파블로의 개에게 빙의된 것도 아니건만 클로버만 보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따라 나선 산책길, 비포장 둑 위로 자동차 한대가 지나간다. 화들짝 놀란 먼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둑 아래로 가볍게 흩어졌다. 둑 아래를 걷던 친구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발밑이 클로버 투성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클로버를 향해 이삭 줍는 여인의 자세를 하며 눈에 힘을 준다. 술래의 발소리를 눈치 챈 모양인지 행운을 준다는 네 잎 클로버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코를 땅에 박다시피 한 내 모습이 괜히 민망해진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허리를 펴며 하늘을 본다. 흰 구름위에 주황 띠를 두른 재색구름이 살짝 얹혀있는 하늘이 참 예쁘다. 방금 화가가 다녀 간 듯 선명하다.

저만치서 와우하며 친구가 손가락 세 개를 펴 흔든다. 벌써 세 개나 찾은 모양이다. 친구를 향해 웃어 보이고 행복이란 단어 안에는 복된 운수라는 뜻도 있으니 잎이 세 개든 네 개든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세 잎 클로버를 쓰다듬는데 다시 와우 하는 친구의 외침이 들린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행운의 네 잎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막연히 든다. 이리 저리 다니다 보니 드디어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띈다. 본디 네 잎 클로버는 돌연변이라 그 주위를 찾아보면 반드시 한 두 개가 더 있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개가 더 있다. 친구를 향해 와우라고 소리치고 눈은 클로버를 향한 채 천천히 걷는다. 뾰족한 풀 위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글동글한 크로버가 마치 초록 양탄자의 무늬 같다. 어린 곤충들이 양탄자 위로 폴짝폴짝 뛰어 다니다 쉬고 있다.

다시 허리를 굽힌다. 평온한 행복을 누리던 곤충들이 후두둑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른다. 그 순간 다섯 잎의 클로버가 보인다. 대박이다. 분명히 네 잎보다는 다섯 잎이 한 수 위일 것이다.

“올레” 의기양양하게 소리치자 친구가 달려왔다. 심마니가 산심을 캤을 때보다 더 뿌듯한 표정으로 친구 앞에 다섯 잎 클로버를 내밀었다. 순간 친구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다섯 잎은 불행이란다. 절대로 뜯어서는 안 되는 거라며 당장 버리란다. 그런 말은 들은 적도 없거니와 겨우 잎 하나 더 붙었을 뿐인데 의미가 그렇게 다르냐며 클로버를 책갈피에 끼웠다. 친구는 나폴레옹과 클로버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그리고는 네 맘대로 하라며 다시 행운의 클로버를 찾으러 갔다.

슬며시 책을 편다. 노곤한 표정으로 클로버가 쳐다본다. 겨우 하나 더 붙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잎 하나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며 다가온다. 하나가 갖고 있는 것은 아주 작다는 의미, 어떤 것의 시작이라는 의미, 최고라는 의미 외에도 ‘한 손뼉은 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고립의 뜻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너와 나는 하나’ 같은 동일함의 의미와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할 때는 전부를 뜻하지 않는가.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하나에 대한 정의를 고심하다가 결국 수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지만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그 안에 품은 것이 많았기에 작은 것으로 인정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수를 나눌 수는 있지만 어떠한 다른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는 간단한 게 아닌 것 같다. 겨우라고 라고 우겼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한 잎인 것 같다.

나는 슬며시 다섯 잎의 클로버를 책갈피에서 꺼내 멀리 던졌다. 그리고는 불행의 기운이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나와 친구는 산책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가끔 허리를 펴서 하늘을 보기도하고 와우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면서 네잎 클로버 찾기에 열심이었다. 친구가 와우 하는 신호를 세 번 더 보내왔을 때 내 눈에는 다시 다섯 잎 클로버가 보였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4개나 내 눈에 들어왔다. 불행을 뜻한다는 다섯 잎 클로버를 두 번이나 본 것이 꺼림칙하고 기가 막혀 주저앉아서 무심코 클로버의 잎을 하나씩 떼어 냈다. 그리고는 더 많은 네잎 클로버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이리저리 헤맸다. 욕심이 앞선 탓인지 세 잎이 겹쳐져 자꾸 네 잎으로 보기도 한다.

한참 뒤에 와우 하는 친구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제 구역이라며 침범할 생각은 말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내 눈에 확대되어 뚜렷이 들어오는 풍경은 내가 다섯 잎 클로버를 네 잎으로 만들어 놓고 간 것을 행운의 잎이라며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행복과 불행이 내가 떼어 낸 잎 하나에서 넘나들고 있다니 인간의 행복과 불행만큼 가소로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세상사라는 게 누군가의 편의대로 만들어 놓은 허상위에서 춤추는 일인 것 같아 씁쓸하다. 만약에 전쟁터에서 나폴레옹이 다섯 잎 클로버를 보고 고개를 숙였더라면 나는 지금 다섯 잎을 찾아 헤매고 있지 않을까. 네 잎이든 다섯 잎이든 희귀한 클로버의 돌연변이일 뿐인데 인간이 정해놓은 정리(正理)앞에서 다섯 잎은 조금 억울했을 것도 같다.

사람들이 편의대로 만들어 놓은 정리에 나는 왜 의심도 없이 네잎클로버 찾기에만 몰두해야했을까? 그저 돌연변이 클로버를 수집 할 수도 있었을 것을. 그랬더라면 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고 그 위에는 즐기는 자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세 잎 클로버 하나를 책갈피에 끼운다. 그리고는 두 잎, 네 잎, 다섯 잎 클로버를 찾아 사뿐사뿐 클로버 양탄자 위를 걷는다.

 

2010 수필세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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