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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지 본문
혼신지/ 이미경
청도는 길이 아름답다. 복사꽃 초롱에서 진홍빛 감들이 전등처럼 이어져 있는 맑(淸)은 길(道)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굽이진 길 위를 가노라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 같아 괜히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산안개와 이름 모를 꽃들, 허물어진 돌담과 빛바래어가는 풍경이 섬광처럼 스치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저만치에 솟대가 보인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고평리에 있는 작은 저수지 혼신지다. 오부실못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양쪽으로 나지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그곳에는 고즈넉한 햇살을 받고 있는 전원주택의 모습이 한 컷의 사진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저수지 전체에서 연꽃이 자라는데 양쪽의 낮은 야산들이 바람막이가 되어 연의 반영(反映)도 마치 거울처럼 깨끗하게 나온다. 그래서 혼신지는 사진작가들이 알음알음으로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다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것을 느꼈다. 본능처럼 자연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전원생활의 꿈은 나에게 길 떠날 구실을 마련해 주었다. 길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비록 목적지는 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정해져있었지만 오가며 만나는 모든 것이 길의 매혹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길은 늘 신선하고 아름다워 떠나고 돌아옴을 반복하게 했다. 여행이란 목적지 하나만 염두에 두면 대부분 실망하기 마련이다. 목적지를 향해가면서 만나게 되는 자연과 사람들이 때로는 목적지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길 때도 있었다. 더군다나 목적지로 가기위해 들어선 길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풍광을 보게 된다면 그날의 여행은 그곳에 조용히 닺을 내려도 좋으리라.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만난 혼신지는 내 희망의 터전이며 영혼의 쉼터가 되고 있다.
사람에 대해서 시들해지거나 한번쯤 의도적으로 고립되어 철저히 외로워지고 싶은 날은 혼신지를 찾아간다. 둑에 서서 고스러져 있는 연의 대궁을 보며 신산했을 생을 그려본다. 진흙 속에서 곧은 대궁 하나 피우기 위해 연은 바람과 함께 흘렀을 것이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한 바람결을 길들이며 바람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깊은 흙속에서 부스스 몸을 털며 꽃을 품었을 것이다.
혼신지는 꽃 진 뒤가 더욱 아름답다. 겨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찬바람에 묵은 연 줄의 독특한 모습들이 연출된다. 고스러진 연이 물에 비치면서 멋진 반영(反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석양에 비치는 연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영상은 혼신지만이 만들 수 있는 풍경이다. 온갖 형태의 모양으로 구부러진 연이 물에 비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혼신지에서는 꺾어진 대궁과 물에 비치는 대궁이 하나가 될 때 완성된 모양이 만들어진다. 구부러진 모습에 따라 하트형, 사각형, 타원형 등이 연출된다. 시들어서 꺾인 연줄기가 만들어 낸 기하학적 무늬를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미완의 동그라미만 그리는 내 삶도 그다지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삶에 대한 설렘이 다시 시작된다. 잎에 물기가 마르고 바스러져 줄기가 꺾여 나가는 고통을 견딘 연이 아름다운 곳이 혼신지다. 지는 해가, 고스러지는 연의 대궁이 당당해 보일 수 있는 곳, 그래서 혼신지에서는 삶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혼신지에서는 말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무성했던 연 숲이 시들어 황량한 그 곳에는 사시사철 씨알 좋은 물고기들의 입질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석양을 등지고 어디엔가 있을 삶의 시원을, 마음속의 울림을 낚기 위한 강태공의 손놀림이 바쁘다.
물의 고요한 흔들림을 보고 있으면 세월에 떠밀려 흔들거리던 삶이 물과 함께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아마도 생명의 근원이 물인 까닭일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 생명은 육신에서 물기가 빠져 나가면서 거두어지는 것이다. 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에 가까워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생명의 근원이란 생성하고 소멸함을 의미하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산보다 물을 좋아 하게 되었다. 그것 역시 죽음을 향해가는 본능이 작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혼신지는 생각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연꽃을 배경으로 한 풍경만을 원한다면 더 좋은 곳이 전국에 널려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혼신지의 일몰풍경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면 일몰이 되기 전까지 용암온천과 청도의 추어탕 그리고 고택기행을 권한다. 맑은 길과 유서(由緖) 깊은 청도는 거기에 걸맞은 운남고택, 운강고택, 도일고택, 면중고택 등이 있다. 고택의 미학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날은 천천히 겨울 혼신지를 걷는다. 실제의 연과 물에 비친 연의 경계가 모호한 길을 걷다보면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것 같다. 안인가 싶으면 밖이고 밖인가 싶으면 안인 삶 같은 길을 걷다보면 거짓말처럼 갑자기 생이 환해지며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러면 솟대가 보이는 길 넘어 내가 떠나온 길로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혼신지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위해 떠나는 곳이며 온전히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의 길이다.
2010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눈이 귀한 대구에 함박눈이 내린다. 눈빛과 하늘빛이 하나가 된다.
바람을 타고 내리는 눈이 닿은 곳마다 풍경은 다른 빛깔이 되어 존재의 신비를 드러낸다.
눈의 속도에 맞춰 변화되는 눈의 신비를 바라보다가 친한 몇몇에게 기쁜 소식 살짝 끼워 안부를 전한다.
흰 머리칼이 햇살을 향해 날 세운 모습을 처음 본 그날 같은 헛헛함이 몰려오면 나는 또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할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충만해지는 것을 알기에.
차가운 눈발에게 기꺼이 팔을 벌려준 겨울나무를 보니 그 옛날 교회 마당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난다. 형형색색의 전구대신 은색 금색으로 접은 별과 종이었지만 불빛을 받으면 은은한 빛을 내었다. 그 풍경위로 퍼지던 교회의 종소리에는 딱 꼬집어 표현 할 수 없는 안온함이 있었다.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해가 지면 날이 밝는 일상처럼 또 다시 해는 바뀌었고 나는 다시 꿈을 꾼다. 하얗게 눈 덮인 길 어딘가 쯤 내 발자국 하나 꽃처럼 피어나기를.
날리는 눈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리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