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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나누기(5매수필) 본문

소금인형 수필2

공간 나누기(5매수필)

소금인형 2006. 10. 1. 11:23
 

 

 

                            공간나누기/이미경


지하철을 타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를 찾았다.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자리로 가서 쓰러지듯 앉았다. 평소에는 앉지 않는 지하철의 구석자리는 아픈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좋은 곳이리라. 뼈마디가 쑤시는 팔을 손으로 주무르다가 머리를 차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경련이 일어난다. 두 팔로 내 몸을 감싸며 어금니를 물었다. 이곳이 집이었다면 고통을 울음으로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팽팽하게 조여 오는 고통은 나만의 공간을 절실하게 한다.

얼마쯤 왔을까? 젊은이가 왜 여기 있어 하는 노인의 푸념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위아래가 없어” 또 다시 이어지는 노인의 차가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노인의 눈빛은 몹시 노기를 띠고 있었다. 놀란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 보고 하신 말씀이세요?”

“그럼 여기 젊은 사람이 또 있는가?” 무섭게 받아치는 노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앞자리에 할아버지 세분이 계시고 옆자리에도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다. 모두들 나를 이방인 보듯 한다. 

“어허, 여기는 경로석이야. 경로석.” 노인은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그 공간에서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하지만 어쩌랴. 고통으로 무너진 내 몸은 우렁차게 소리치는 당신의 몸보다 더 노쇠한 상태인 것을. 한기로 떨리던 몸이 갑자기 열이 오르며 먹먹해지며 현기증이 났다.

 “어허” 노인은 재차 재촉했다.

“할아버지 제가 많이 아프거든요.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저기 가서 앉으시죠.”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낯선 여자를 몰아내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노인을 보며 난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덜 닿는 곳에서 조용히 가려고 선택한 공간이 뜻하지 않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노인과 나 사이에 긴장감이 돌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이 자리는 경로석이 아니라 노약자 석입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몸이 아픈 사람도 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저기 가서 앉으시죠. 아주머니도 많이 아파 보이는데.”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반듯이 세운 등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려고 하는 순간 노인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또 뭐야. 두 사람은 어떤 사이야.”

“어떤 사이는 무슨  어떤 사이에요. 아무 사이도 아니지.”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를 향했다. 어떤 일에도 관심 없이 문자 보내기에 바빴던 학생하나가 카메라를 찍으려하고 있었다.

갑자기 구토가 일었다. 나는 중간 역에서 비칠비칠 내렸다. 공간을 가르며 달려가는 자하철의 끝을 바라보며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 목소리에는 눈물이 가득 묻어 있었다.  

가족을 기다리며 나는 넓은 공간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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