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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의 죽음 본문

소금인형 수필2

장수풍뎅이의 죽음

소금인형 2006. 1. 17. 11:18

 

 

 

장수풍뎅이의 죽음/이미경  


 풍뎅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큰 몸집이었다. 머리에 뿔돌기가 있는 투구를 쓴 모습이 듬직해 보였다. 흑갈색의 몸체에서는 고향집 볕 내리는 고운 마루의 윤기가 흘렀다. 그 윤기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이가 곤충을 키워 보겠다며 풍뎅이를 사 들고 왔을 때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키우겠다며 사온 병아리, 강아지, 거북이 등의 뒤치다꺼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고 죽기라도 하면 처리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풍뎅이의 늠름한 모습에 생각이 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발효 톱밥 속에 살며 젤리만 먹는다고 하니 키우기도 쉬울 것 같았다. 더구나 이름도 장수풍뎅이라 하니 잘만 키우면 천명을 다 하며 오래 살 것 같았다. 커다란 유리 상자로 옮기고 밖이 훤히 보이는 베란다에 갖다 놓았다. 매일같이 톱밥을 펴주고 신선한 젤리도 갖다 주었다. 풍뎅이도 좋은지 낮에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푸드득 퍽, 푸드득 퍽…….’ 늦은 밤 풍뎅이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풍뎅이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것이 풍뎅이 노랫소리이거니 했다. 넓고 따듯한 보금자리와 매일 공급되는 신선한 먹이에 주인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으니 행복지수도 충만하리라. 

달빛 환한 어느 밤이었다. 풍뎅이가 달을 향해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날아오를 적마다 유리 천장에 부딪쳐 내동이 쳐진 몸을 추스르며 비상의 몸짓을 반복 했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푸드득 퍽, 푸드득 퍽…….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리는 더 처절해졌다. 멍자국으로 단단히 응어리진 몸이 나를 원망하겠지만 애완용 곤충으로 태어나고 길러진 터라 사육통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존재는 얼마만큼 운명적인 것일까. 국가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고자 한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지지도 않는 삶을  견디면서 살기를 바랐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니까. 참고 살다보면 그런대로 살만한 게 세상일이 테니까.

 풍뎅이는 병 속의 삶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밤마다 하는 날갯짓이 속울음인양 아프게 들려와 그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별빛 총총하고 기분 좋게 바람 부는 날, 베란다 창문을 열고 사육통 문도 활짝 열었다. 풍뎅이는 작은 날갯짓을 하는가 싶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날개를 간질여도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었다. 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안한다더니 풍뎅이가 그 짝이었다.


나는 지금 풍뎅이 주검을 보고 있다. 장수풍뎅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수명은 성체가 된 후로부터 삼사 개월이고 짝짓기를 하게 되면 수명은 훨씬 줄어든단다.

유전자에 새겨있을 비상을 포기해버린 풍뎅이가 측은해 보여 암컷 풍뎅이 한 마리를 넣어주던 날. 자유를 포기한 겁쟁이는 먹이를 먹는 암컷의 머리를 누르며 수컷의 위용(威容)을 보였다. 젤리에 머리가 처박혀 괴로워하는 암컷이 불쌍해 보여 거칠게 밀어내었다. 충격을 받았는지 풍뎅이는 한참 후에야 톱밥 속으로 들어갔다.

그즈음 풍뎅이의 몸이 눈에 띄게 둔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귀찮은 듯 느릿느릿 기어 나와 놀이나무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식탐이 문제라고 생각한 나는 먹이를 조금씩 주었다. 그것이 톱밥 속을 파고 들어갈 기력이 없던 마지막 행동임을 모르고 먹이 줄인 일과 암컷을 괴롭히던 행동이 구애라는 것을 알지 못해 상처 준일이 걸린다.

풍뎅이의 주검은 다리 하나가 잘려있고 몸이 두 동강난 채 미라처럼 말라있다. 움직임이 없는 풍뎅이 곁에 암컷이 오랫동안 입을 대고 있었다는 아이의 말을 실마리로 풍뎅이의 죽음을 헤아려본다. 풍뎅이는 햇빛을 따라 이승의 풍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산란을 위해 단백질이 필요했던 암컷은 풍뎅이의 체액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쯤 풍뎅이는 멋진 뿔돌기를 앞세우고 짙푸른 숲을 날고 있을 것이다

풍뎅이의 원래 터전은 울울창창한 참나무 숲이었다. 그들의 선조는 천둥처럼 높이 뻗은 두꺼운 나무껍질을 뚫고서 그 수액을 마시며 살던 자유로운 종족이었다. 사람의 이기심으로 숲의 고요가 무너지며 그들의 운명도 애완용 곤충으로 바뀌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한다면 풍뎅이는 분명 자유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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