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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본문
만추/이미경
어머니는 끝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다. 머쓱해진 나는 찻물을 올려놓는다며 거실로 나와 창밖을 내다본다. 여름 내내 싱싱했던 목련의 푸른 잎들은 시나브로 떨어져 가을비에 누렇게 퇴색되고 야윈 가지로 남았다.
지금 어머니의 심정도 저 나무와 같을 것이다. 내리는 가을비에 풍경이 젖고 내 마음이 젖어들고 지난 봄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부르던 동생의 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나야 사랑하는 동생 왔다.” 현관을 들어서는 동생의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니?, 다 큰애가 비는 왜 맞고 다니니?” 수건을 받으며 동생은 그냥 맞았다며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냥’이라는 단어에서 힘을 빼다가 ‘맞았다’라는 단어에서 다시 힘주어 말하는 동생에게서 쾌활함을 과장한 목소리가 느껴진다. 동생과 나는 띠 동갑이다. 맏이인 내 뒤로 딸 셋을 낳고 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동생을 낳으셨다. 어머니에겐 그야 말로 금쪽같은 자식이었겠지만 딸들 앞에서 한 번도 드러내놓고 표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 엄하게 하셨고 그럴 때마다 울고 있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내가 보듬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생의 과장된 행동이나 표정에도 속마음의 대부분을 읽을 수 있다.
차를 끓이는 내내 평소와 달리 말없는 동생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처져있는 동생의 어깨위로 어머니의 어깨가 오버랩 된다.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딸들을 데리고 나들이하기를 좋아하셨다. 그런 날 이면 가끔씩 동네 어르신을 만나곤 했는데 한결같이 아들 타령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딸 많은 집 부모가 비행기 탄대잖아요” 하며 웃으셨다. 나들이에 신난 딸들은 왁자지껄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어머니는 저런 어깨 모양을 하셨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동생은 한숨부터 쉬었다. 동생에게는 대학시절부터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단다. 졸업을 하고도 만남은 이어졌고 혼기가 된 동생은 프러포즈를 했다. 당연히 승낙 할 줄 알았는데 머뭇거리더란다. 이유인즉 위로 시누이가 넷이나 되다 보니 한마디씩 거들어도 만만하지 않을 것이며 연로하신 부모님의 외아들 자리는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
“솔직한 점은 마음에 드네.” 차를 마시며 나는 짐짓 그렇게 말했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득남 축하의 말을 들었다. 그럴 때 마다 어머니는 남들 다 있는 자식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지만 내심 동생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간혹 손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아들 잘 생겼지요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것은 내성적인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어머니는 딸들이 친구와 타투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잘잘못을 가려주고 다독여 주시던 조용한 분이셨다. 그런데 남자아이와 싸우고 온 날이면 이성을 잃어 내 손을 잡고는 그 아이의집에 찾아가 따지곤 했는데 남동생이 태어나고 부터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에게는 열등감 아닌 열등감이 있다는 걸 어슴푸레 알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낳은 동생이라 훗날 당신이 혹 짐이 되지 않을까 늘 초초해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만 찻잔 속에 어렸다.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동생의 사랑은 잔잔한 갈등만 되풀이 될 뿐 진전이 없어 보였다. 나는 동생의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를 했다. 처음 본 그녀는 성격이 밝고 얌전한 것이 동생이 좋아할만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가까워진 나는 그녀가 우려하는 부분을 이해시켜나갔다. 우리 집은 남동생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를 동생혼자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딸 넷 모두 똑 같이 참여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튀는 동생은 없지만 만약에 힘든 일이 생긴다면 내가 막아 주겠다. 부모님이 연로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진 건강하시고 동생이 장가들면 분가 시킨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으니 걱정 말라고 했던 것 같다.
그 후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약혼식을 하고 결혼 날짜가 잡히자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하신 말씀과 다르게 동생내외와 같이 살기를 원하셨다. 맞벌이 하는 며느리를 위해 당신육신 멀쩡할 때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생은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좀 곤란하다며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매듭을 묶는 것도 푸는 일도 내 몫이기에 친정 나들이를 한 거였다.
식구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올케에게는 물설고 낯선 시댁이라 불편할 테고 괜히 엄마만 며느리 시집살이하는 일 생긴다며 분가시키라고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약해 보이는 며느리 걱정만 하셨다. 좋은 사람도 가까이 있다 보면 단점도 보이기 마련이니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좋은 감정으로 있다가 어머니 힘 부치면 그때 자연스레 합치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고집을 부리셨다. 급기야 나는 올케가 깔끔한 어머니의 성격을 불편해 할 것이며 알뜰한 어머니가 외식하는 것도 탐탁하지 않게 여길게 뻔 한데 젊은 올케가 가여울 것 같다는 말을 해버렸고 잠시 침묵하던 어머니는 “너 내 딸 맞나” 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신 것이다.
슬며시 방문을 열고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나에게 하신 말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찬거리를 사오겠다며 총총히 현관으로 사라지셨다.
무심한 세월은 여린 잎을 진초록으로 만들어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더니 이제는 모든 것을 떨쳐 내고 있다. 가야 할 때를 놓친 나뭇잎 하나가 가지 끝에 누렇게 말라있다. 가을 빛 낙낙할 때 고운 색으로 지지 못함을 후회라도 하는 걸까. 수심이 깊어 누렇게 뜬 얼굴이 겨울처럼 차갑다. 삶이란 떠나고, 놓치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씨앗 뿌려 보듬고 정주는 일의 연속인 것을.
저 만치 이별의 아픔을 새집처럼 지어놓았을 만추의 어머니가 휘황한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얼어붙은 풍경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