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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법 본문
시 낭송법/이미경
입모양을 크게 하세요.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 ‘ㅡ’와 ‘ㅓ’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요.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경상도에서 자라서 그렇다는 핑계는 대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이 평소에 표현을 잘하지 않아서 그래요. ‘어‘ 인지 ’으‘ 인지 정확하게 당신 을 표현하세요.
또 당신은 그다지 남을 의식하지 않는군요. 당신 입 꼬리가 그것을 말해줘요. 당신은 그것이 털털하고 편한 성격이라 생각 할지 모르지만 가끔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요. 특히 이중모음이 들어 있는 단어를 말할 때에는 입모양에 더 많은 신경을 쓰세요. 입 꼬리에 힘을 주고 입을 크게 벌린 다음 발음에 맞는 입모양을 해보세요. 깔끔한 삶 같은 목소리가 나올 거예요.
어때요. 당신이 들어도 목소리가 참 밋밋하죠. 높낮이도 없는 것이 너무 수동적으로 들리는 군요. 아름다운 시가 갑자기 지루한 일상 같죠. 어떤 날은 나긋나긋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일상과의 싸움을 맛깔나게 하는 법을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게임 같군요. 왜 있잖아요. 경쾌한 음악의 리듬을 타며 전진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그런 거 말이에요. 고인돌 이란 게임은 어때요. 좀 고전적인 하지만 더벅머리 아이가 망치로 장애물과 싸우는 게임 말이에요. 길 중간에 불덩이가 나오면 뛰어 넘고 적을 망치로 때리면 과일이 나오고, 알 같은걸 때리면 천사나 슈퍼보드가 나왔던 게임 말이에요. 당신에겐 삶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갈 경쾌한 진취성이 필요하군요.
잘 들어보세요. 잔잔한 배경음악의 리듬을 타지 못해 박자를 놓치거나 휘몰아치기 바쁘죠. 또 매끄럽지 못한 들숨과 날숨은 어떻고요. 헐떡거리고 있네요. 그것이 삶의 리듬타기에 서툴러 늘 종종걸음 치기 바쁜 당신의 모습 같지 않나요. 리드미컬하게 리듬을 타는 삶이 얼마나 편안하고 유연한 것인지 당신은 아직 알지 못하는군요. 심호흡을 한 후 어깨 넓이만큼 다리를 벌리고 시의 분위기에 맞는 리듬을 타보세요. 그림을 그리듯 자연스럽게 낭송하세요. 그 자연스러움이 바로 삶의 균형이란 걸 기억하세요.
글자 하나하나를 정확히 짚으며 발음하세요. 당신이 알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관계처럼 말이에요.
아, 빠뜨릴 뻔 했네요. 기교는 절대로 부리지 마세요. 한 두 번은 들어줄만한지 몰라도 금방 싫증이 나거든요. 혹 음색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진솔한 당신의 목소리 색으로 천천히 다가가세요. 세월에 익다보면 중심이 단전에 잘 놓여 있는 사람의 진중함과 기품이 있는 소리가 나온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만의 은은한 삶의 향기랍니다.
시 낭송 녹음이 있는 날이다. 건조하게 돌아가던 녹음기가 소리를 토해내는 순간 온 몸이 더워지더니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녹음기는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훤히 비추며 나무라고 있는 것 같다.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턱을 괴고 있는 사람, 의자 깊숙이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그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가수가 반주에 맞춰 포화상태의 침묵을 깨뜨리기 직전, 심사위원 표정이 저 보다 더 엄숙할까. 내 목소리에 촉각을 세우고 말 알갱이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의사소통하는데 무리 없었고 듣기 거북하다 타박하는 이 없었던 이유였을까 아니면 숫자화나 형태화 시킬 수 없어서였는지 한 번도 내 목소리를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녹음기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많이 거슬린다. 그 거슬림이 너무 생소해서 내 목소리가 아닐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불혹이 넘도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목소리를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충격이었다. 날마다 들여다보는 거울에도 내가 볼 수 없는 각도가 있듯이 내 삶에도 목소리처럼 내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했다.
더 많이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삶의 약한 곳이 보일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서 채우고 수정해가는 일은 깔끔하게 낭송된 시 같을 것이다.
시의 마지막을 낭송하는 내 목소리는 여전히 세련되지 못하게 가늘게 떨고 있다. 그 떨림 뒤로 또 하나의 환청이 들린다.
지구에 붙어살면서도 그것이 허공에 떠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는 당신이 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답니다.
세상의 관심에서 저 만치 밀려나 소외된 것들과 더 이상의 경쟁력이 될 수 없어서 방치 된 것이 가늘게 떨며 내 지르는 목소리에도 눈길 한번 돌려보세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