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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펑나무 본문
/이미경
따프롬 사원의 나무가 떠올랐다. 건물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서있는 풍경이 아니라 사암벽돌 건물 틈새에 뿌리를 내리며 건물과 뒤엉킨 나무였다. 크메르 전쟁 후 사원이 밀림에 방치되면서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나무의 씨앗이 성곽의 돌 틈 곳곳에 떨어져 뿌리가 돌연변이 된 나무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할 뿌리들은 마치 거대한 공룡발가락처럼 사원을 감싸거나 뒤덮은 모양이 동화책속 삽화를 연상시켰다.
신산한 세상을 힘들게 살아온 것 같은 애처로움에 나는 그 뿌리를 한동안 바라보았었다. 그 나무 죽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운명이라 했다. 뿌리가 자라도 사원이 무너지고 뿌리가 죽어도 사원이 무너지니 나무는 그 상태 그대로 사원을 지탱하고 있어야 하는 고통을 천형처럼 지니고 살아간다. 독하디 독한 성장 억제제를 받으며 크지도 죽지도 못하고 속울음만 삼킬 것 같다. 그 나무 지금도 사원을 끌어안고 따가운 햇빛아래 힘들게 서 있겠지.
아버지의 몸집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작아졌다. 야위어진 아버지의 몸은 링거 줄, 산소호흡기, 도뇨관과 콧줄 같은 줄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늘고 긴 줄에 목숨을 의지한 채 거친 숨을 쉬고 계셨다.
뇌출혈로 병원 온 아버지는 뇌압이 높아져 구토를 하면서 그 음식물들이 폐로 들어갔다. 폐렴을 시작으로 십이지장 천공, 복막염, 신장기능이상 등으로 병마는 아버지의 몸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아버지의 몸을 흔들며 몇 번을 불러 보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솟구치는 눈물을 닦으며 흔들리는 숫자판을 맥없이 바라본다. 지금은 기계가 표시하는 심장 박동 수, 혈압, 맥박수로 아버지가 살아계심을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아버지는 고통의 절정에 서 계신다. 그 누구도 함께 건너 줄 수 없는 강을 외롭게 바라보고 계실 것 같다. 독한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아버지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망가지는 몸을 보다 못해 어느 날 나는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이 줄 다 떼고 집에 가서 편히 쉴까요?” 아버지는 희미하게 고개를 흔드셨다.
자신의 뿌리로 인해 무너지는 사원을 끌어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스펑나무처럼 아버지도 자신을 갉아먹는 독한 약물에 몸을 의지하며 긴 시간을 죽은 듯 견디고 있는 것이다.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스펑나무 뿌리의 신음이 들리는듯하여 나는 아버지의 가슴을 자주 토닥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스펑나무와 같은 운명을 타고 난지도 모르겠다. 나무뿌리 같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베어내고 싶지만 베어내면 내가 넘어지는 상황,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껴안고 가야하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평생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셨다. 그 그리움은 삶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방황이 되기도 했고 음악이나 문학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아버지는 신춘방송극 공모에 당선되셨다. 아버지가 매일 원고지와 씨름을 하던 그 시절, 어머니는 나를 업고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 다니셔야만 했단다. 단칸방이었기에 내가 울기라도 하면 아버지께서 글쓰기에 몰입할 수 없다며 짜증을 내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방에 앉아 쓰신 글은 라디오 연속극이 되어 전파를 탔지만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자라고 동생들이 하나 둘 태어나자 아버지는 결국 드라마 쓰는 일을 그만두셨다. 아버지에게 있어 글은 한 그루 스펑나무였다.
나는 지금 아버지의 유품 상자를 보고 있다. 잠자던 아버지의 꿈들이 압축되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신춘드라마 공모에서 당선되고 상을 받는 사진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아버지의 모습은 젊다 못해 앳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문학의 열정에 들떠있던 꽃미남인 아버지를 생각하니 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내가 오래도록 두고 천천히 봐야 할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빛바랜 원고 뭉치이다. 이십 여 편쯤 되는 방송 대본은 내 손이 닿자 잠자고 있던 세월이 서러운 듯 눈물처럼 바스러진다. 작은 방에서 밥상하나 달랑 펴 놓고 글을 쓰시던 아버지 고뇌가, 창작의 기쁨이 갑자기 내 몸 속에서 피돌기를 한다. 낯익은 사진도 눈에 띈다. 몇 해 전 앙코르 유적지 여행을 하면서 스펑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첩에는 어디서 구해 놓았는지 스크랩해 놓은 내 글들과 아버지께서 틈틈이 적어놓은 시들이 보인다. 글들과 놀 때가 행복하다는 아버지.
앙코르 유적지의 나무를 본 사람들은 말 하곤 했다. 나무뿌리가 돌 틈을 파고 들어가는 집요함이 무섭기조차 하다고.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돌이 나무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각인 것 같다.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기도 하지만 그 뿌리가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도 하고 있지 않은가.
사진 속 스펑나무를 다시 본다. 건물을 배경으로 그냥 서있는 풍경이 아니라 사암벽돌 건물 틈새에 뿌리를 내리며 건물과 뒤엉켜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 나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살이 별것 있느냐고. 얽히고설켜 서로의 배경으로 살다 가는 게 아니냐고. 누구라도 곧 떠날 이승이지만 사는 동안 이런 풍경 하나 없다면 생이 너무 심심하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