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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이미경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잔잔하던 속이 물수제비 같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금방이라도 멀미를 할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끝까지 말하지 못함을 원망하듯 뱃속에서 요동을 쳤다.
엄마들이 모인 곳은 조그만 식당이었다. 학부모로서 만나 10년이 훨씬 넘게 이어진 모임이었다.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대해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교우 관계는 어떤지 엄마들은 궁금했다. 아무리 학교생활에 대해 말을 안 하는 사내아이라 해도 집에서는 한마디씩 할 터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번 엄마들의 입을 통해 들은 아홉 명 아이의 말을 종합해보면 학교생활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햇빛을 향해 자라는 덩굴식물 같았다. 나무처럼 쓰러지지 않도록 줄기 속으로 양분을 저장하기 보다는 연약한 줄기로 바위도 전봇대도 아랑곳없이 타고 올랐다. 엄마들의 눈에는 아이들이 늘 아슬아슬해 보였다. 직립하는 나무처럼 줄기 속에 양분을 충실히 다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식들에 대한 우려의 깊이만큼 엄마들의 정도 끈끈해졌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많은 엄마를 중심으로 나이가 가장 적은 엄마가 총무를 맡았다. 나이차이라고 해봐야 두세 살이 많거나 작았다.
엄마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별 탈 없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때서야 자식이란 부모 눈에는 늘 어설퍼 보이지만 덩굴손의 보이지 않는 빨판을 이용하여 작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줄기로 가야 할 양분을 땅으로 보내며 뿌리를 튼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으로 향했던 관심을 엄마들은 내부로 돌리면서 친밀도는 더 깊어갔다. 요리에 대한 정보를 전화로 주고받고 취미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날은 오랫동안 못 본 연인을 만난 것처럼 달뜬 표정으로 끝없이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내었다. 뿔뿔이 흩어졌진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입을 통해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푸릇하던 나뭇잎이 하나둘 꽃처럼 물들던 날, 커피 집에서 총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남편이 하는 사업채에 들어가서 사무를 보기로 했으니 총무자리를 누군가 맡아 달라는 거였다. 오년 동안 만날 장소를 정하고 참석여부를 물어 예약을 해왔다. 참석 여부를 즉시 알려오면 좋을 텐데 두서넛은 총무가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군 말없이 해온 일에 고마워하며 깔끔한 일처리를 이유로 간곡히 부탁했다. 총무자리는 연임되었다. 그 대신 참석여부는 총무가 다시 전화 하지 않도록 즉각 알리기로 했다. 가끔은 바쁜 총무가 불참 할 때도 있었지만 장소는 미리 예약해 놓았고 누군가 회비를 걷어 식대를 지불하고 남은 돈은 다음 달에 총무에게 전달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지나자 아이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각자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찾아서 진학을 했다. 아이들이 자란 만큼 삼십대였던 엄마들은 사십대가 되었고 사십대였던 사람은 오십대가 되었다. 누구는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누구는 오빠를 먼저 보냈다했다. 한 두 사람은 머리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한 두 사람은 흰 눈을 가리느라 염색을 했다. 막내였던 총무는 유전인지 머리가 가장 빨리 쉬었다.
머리 염색하느라 좀 늦었다며 총무가 헐레벌떡 뛰어온 날은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총무는 다시 자리를 내놓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모두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미안해하면서 또 다시 간곡히 부탁했다. 마음 약한 총무는 또다시 연임되었다.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오늘도 어김없이 모임을 가졌다. 엄마들은 여전히 만남의 울타리를 맴돌고 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아이, 여자 친구를 엄마에게 부탁하고 군대에 간 녀석, 휴학을 하고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을 떠난 방랑자도 있었다. 누군가 아이들이 뜨겁게 타오르는 해라면 우리는 이우는 달 같다고 해서 쓸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머지않아 닥칠 남편의 퇴직 문제와 노후걱정을 당겨서 하며 훗날 손자를 보게 되면 모임에 데려오기 없다며 깔깔거렸다.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모두들 시장했던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젓가락을 열심히들 움직였다. 그때 총무가 자리를 정말 내 놓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다시 꺼냈다. 나이든 엄마가 총무의 말을 자르듯 말을 받았다. 젊으니까 그렇게 똑 소리 나게 일을 잘 한다며 자신은 요즘 어제 한 일도 가물거릴 때가 있다며 딴청을 부렸다. 그러자 다른 엄마가 말을 이었다. 어느 모임이든지 총무가 중요하다며 자신이 하는 어느 모임은 총무가 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아 깨졌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총무의 말은 아랑곳없이 이쑤시개로 소라를 까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가 소라를 돌려 까다 접시에 떨어트렸다. 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총무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무안해진 내가 입을 열었다. 총무가 지금껏 정말 수고를 많이 했으니 이제부터는 나머지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돌아가면서 총무를 하자고 했다. 모두들 바쁘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나 모두 내 일이 아니라는 듯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성가신 일이 내 몫이라도 될까봐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찬 공기를 마셨음에도 속은 더 심하게 울렁거렸다. 울렁이는 속을 간신히 달래며 집을 향해 뛰었다. 제비뽑기를 하자는 내 말에 싫다며 자기는 빠지겠다고 말하던 나이 많은 엄마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따라왔다. 예상하지도 않았던 엄마의 말에 당황한 나는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계속 총무자리를 떠넘기는 건 폭력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먹는 나이가 훈장은 아니지 않느냐며 순리대로 하자고 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엄마는 나에게 총무하면 되겠네 라며 비아냥거렸다.
모두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으면 다 좋다는 이기적인 상황논리에 길들여져 불감증을 앓고 있었다. 총무의 간절한 말을 못 들은 척 소라 까기에 바빴던 엄마들의 비열한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울컥울컥 속에 있던 것들이 올라왔다. 십년 이상의 우정임에도 털끝만한 손해는 보지 않으려던 엄마들의 이기심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되어 쏟아졌다.
대구문학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