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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 본문
와불 / 이미경
여행 일정을 바꾼 것은 순전히 와불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와불이라는 친구의 말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홍진도 아니고 부처님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와불 하면 운주사가 떠오른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우던 중 일하기 싫은 동자승이 일부러 닭소리를 내었다. 그 바람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두 부처가 와불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나는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만든 이가 와불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하늘에서 내려온 석공일지라도 하루 밤낮으로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와불이 코에 단내가 날 정도로 일한 뒤 하늘로 올라가기 전 허리가 아파 잠시 누워 쉰다는 것이 잠이 들었을 것이다. 너무 피곤한 탓에 해가 뜨는 것도 모르고 자다가 그대로 돌로 변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운주사 와불을 볼 때면 막차 놓친 이방인 눈을 들여다보듯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내 상상력의 한계는 보고 들은 것이 전부인 양 운주사의 와불을 생각하며 친구가 말한 절로 향했다. 찾아가는 길은 여느 절과 다름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양가로 줄지어 서 있는 나뭇잎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땅에는 햇빛 무늬가 아롱아롱 춤을 추었다. 나무 그림자를 배경 삼아 걷고 있는 내 그림자도 덩달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였다.
절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33층 높이의 진신 사리탑이었다. 봉안 당시 1과였던 것이 와불 준공 무렵에 2과가 증가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있었다며 친구는 호들갑을 떨었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내 귀에는 사리가 탑 속의 온도나 습도에 의해 둘로 나누어졌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탑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거대한 와불이 보였다. 와불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질박한 와불이 아니라 금박을 입힌 커다란 불상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소인국 사람들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중생 앞의 거대한 와불에는 아우라가 없었다. 햇빛 탓이었을까 번쩍번쩍 광채를 내는 황금빛이 초등학교 문방구에 진열된 값싼 액세서리 같았다. 존엄과 진리와 불멸을 상징한다는 황금빛도 과하니 제 빛을 잃어버리기는 석가모니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심이 깊은 친구는 개금불사를 했다고 했다. 개금불사는 불성을 해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는 수행이라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열반상으로 있는 부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모습이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음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탐진치(貪瞋癡)에 찌든 스님들이 나약하고 어수룩한 신도들을 현혹해 입힌 옷이 부담스러워 열반에 드시지 못할 것 같았다.
인파에 밀려간 곳은 와불의 발이 있는 곳이었다. 걸리버 발 같은 와불 발바닥을 사람들이 열심히 쓰다듬고 있었다. 중생들을 위해 이리저리 몹시 바쁘게 뛰어다닌 발이었다. 열반하셨을 때 가섭에게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민 뜻은 부처님의 법과 율을 잘 전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발바닥을 쓰다듬는 행동이 그저 석가모니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낭랑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발바닥에 법륜과 옴자 1만 6,000여 자가 새겨져 있어 관(觀)하면서 손으로 문지르면 중생의 번뇌가 소멸하고 만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 가닥의 빛이 나와 사방의 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는 부처의 발은 세상 때에 너덜너덜해진 손들이 쉼 없이 오갔다. 이런 광경을 가섭이 봤다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와불의 몸 안에 법당이 있었다. 천장에는 소원을 비는 연등이 숨 쉴 틈 없이 피어있고 양 벽에도 연등을 든 작은 부처 인형이 오밀조밀 있었다. 인형마다 사람의 이름이 써진 걸 보니 인등불사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 아래서 머리를 숙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로 법당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운주사에는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뒤바뀐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만든 이야기일 것이다. 땅속 깊이 박힌 바위에 새긴 와불이 일어서려면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어려울 터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부처의 힘이니 그 힘을 빌려 차별과 구분이 없는 세상을 염원한 민초들의 조용한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아 운주사를 걸을 때면 코끝이 찡했다.
세속의 헛된 욕망에 집착하지 말라, 자신을 낮추고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면서 선을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불상 앞에서, 십자가상 앞에서 이웃사랑은 오간데 없이 현세에 복을 달라고 빌고 또 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을 앞장서 모시는 사람들이 먼저 높은 건물과 큰 불상으로 차별을 짓고 욕심을 차리고 있다. 문득 와불 속이 궁금해진다. 나라면 속이 시끄러워 벌떡 일어날 것 같았다.
와불을 등지고 천천히 걸었다. 해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비루한 중생들의 삶이 아기자기하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현실성 없는 자비인가.
삶이란 엎어지고 부러져도 다시 일어서서 유유히 걸어가는 것의 반복이어서 망가지고 회복되기를 거듭한다.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를 울리고 지나갔다. 석불이든 금불이든 절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는 마음이었다. 엎어지고 부러지면서 오탁해진 자신의 상태를 볼 수 없으니 상을 세워두고 절을 하는 것이리라. 와불은 또 다른 나였다. 불의나 불평을 보고도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이유로 눈을 반쯤 감아버리고 약자 앞에서 강자의 눈치를 보며 비스듬히 누워 버리던 내 모습이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와불에게 합장하고 절을 했다. 이제는 내 주장과 신념 앞에서 좀 더 떳떳해지리라. 나란히 걷던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무엇을 빌었냐고 물었다.
“빌기는 무슨, 잘 살아 보겠다는 의미로 절하는 거지” 내 말이 너무 냉소적이었던지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2015년선 수필 가을호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