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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수필집 모자이크 본문
외로운 섬들을 위한 소통
홍억선(수필가)
1. 인생은 모자이크다. 세밀하게 그려진 사실화도 아니고 뜻 모를 추상화도 아니다. 그 중간쯤의 화법으로 만든,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듬성듬성 점묘법으로 찍어놓은 점들의 조합이다. 마치 바둑판 위의 포석처럼 몇 개의 점들을 놓아두고, 곳곳에서 벌이는 삶과의 교전들을 모으고 모아 한 판 바둑으로 완성하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한 권의 수필집도 그러하다. 흰 도화지를 펴놓고 그 위에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조각들을 붙여 놓았다. 그 조각들이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검기도 하고 또한 희기도 하다. 그 조각들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그들이 마침내 하나의 모습을 갖추어 수필집 『모자이크』를 이루었다.
2. 수필가 이미경은 마흔 무렵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 이전의 삶의 조각들이 작품에 반영된 바 없기에 그저 평범 안온한 주부였다는 것 외에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 살고 있는 그가 첫 번째로 택한 곳이 독서모임이었으니 지적 갈망이 컸으리라 여겨진다. 읽고 토론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간 자리가 직접 써보는 문학창작이었다. 다년간의 수필공부는 분명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나 더 많은 체험과 상상의 재료들이 요구되었기에 만학도로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늦깎이로서 4년 동안의 지난했던 사연은 이미 작품 속에서 여러 번 토로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진화는 멈추지 않았고, 상급과정으로 이어져 지금 다문화가정을 지도하는 한국어교사로서의 직업을 가지게 하였다.
여기까지가 최근 그의 십여 년 간의 숨찬 인생 조각이다. 그는 이 조각들을 종횡으로 늘려 50여 편의 수필을 모았다.
3. 이미경의 수필이 끊임없이 천착하는 모티브는 ‘소통’이다. 그의 수필에서 ‘소통’의 주제를 비껴간 글은 찾기가 힘들다. 소통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근원적인 태도이면서 인간 사회에서 소멸되지 않는 불변의 화두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 바다에 떠 있는 한 점 외로운 섬이다, 이 섬들이 무언가에 의해 서로 닿지 않으면 소외와 단절에 질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소통의 부재는 여전히 우리들 가까이에 만연해 있어 당황스럽게 한다. 우선 작품집의 모두에 놓인 「닿지 않는 소리」를 읽는다.
위층과 우리 집은 같은 위치에 방이 있고 주방이 있을 터였다. 거의 비슷한 위치에 가구들이 자리를 잡고 비슷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니 같은 배관을 쓰고 있는 윗집과 우리 집이 한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윗집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늘 존재 신호를 배관으로 내보냈다.
아파트의 배관은 아래위 층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같은 위치에 설치되어 있는 배관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 배관에 갑지기 틈이 생겨 물이 떨어진다. 흔히 체험할 수 있는 이 단절의 상황에서 배관을 복구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할 고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섬」은 어느 병실의 풍경이다. 맞은편 침대에는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계신다. 듣지 못하는 할머니는 누군가 웃고 있으면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며 화를 낸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느그들 지금 내 욕하고 있지!” 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때 여리디여린 할머니의 눈빛이 반짝인다.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순한 짐승의 눈빛이다. 사위어가는 육신을 붙잡고도 죽음보다도 소외됨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슴이 싸하다. 병실 사람들은 할머니의 반응에 관심이 없다는 듯 모두 TV를 향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동공에는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화면이 비치고 있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곤혹스러움은 늘 품에 안고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모자간에도 존재한다. 작가는 아들 둘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를 차별 없이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둘째는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형이 95점을 받아와도 엄마는 더 잘할 수 있었다며 나무라면서 자신은 70점만 받아와도 엉덩이를 툭툭 치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둘째를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것을 차별로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경의 수필은 참으로 맛깔스럽게 읽히는 글들이다. 정지된 원샷의 틀에 잘 버무린 언어의 풍경을 빚어 넣은 것 같다. 사실 ‘소통’이라는 과제는 수필에서 다루기에 다소 건조한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비문학에서 몇 개의 논리적 문장으로 풀이하기에 적당한 화소다. 하지만 이렇게 달달하게 읽히게 하는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가끔 수필에 해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우 잘 쓴 수필이나 아주 쉬운 수필을 만날 때 그러하다. 이미경은 무미한 소재도 아주 쉽게 그리고 매우 잘 쓰는 작가다. 이미 그가 수필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은 교술장르다. 외부의 개입을 받고 있는 자아를 세계화하는 작업이다. 극복해야 할 현실 속에서 개인의 체험을 감동이나 교훈이라는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을 문학이라는 장치에 대입하는 일이 선결과제다. 작가는 이런 일에 능숙하다. 이를테면 위의 인용문에서 ‘배관’은 그냥 건축자재로서 배관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를 상징한다. 형제의 차별을 다룬 「줄자」에서 줄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언제라도 길게 자신을 펼칠 있는 동생의 재능을 상징한다. ‘섬’ 역시 남해의 외딴 섬이 아니라 소외된 고독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는 이렇게 기운 자리가 말끔하여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언어의 의미화로 독자에게 부담 없는 독해를 제공한다.
4. 거듭 말하건대 이미경은 ‘소통’을 말한다. 소통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집요하다. 그 집요함은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대구를 고향으로 둔 여자와 제주도를 고향으로 둔 남자가 만났다. 혼인 첫날 폐백인사를 드리기 위해 한쪽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에게 “폭삭속아수다”라는 말이 연이어 들려온다. 여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 경사스런 결혼식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도 속았다는 말을 계속하는 것인지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다. 철이 없는 여자는 물설고 낯선 땅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채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폭삭속아수다’ 말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제주 방언인 것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나는 이 ‘폭삭속아수다’라는 짧은 한 마디가 작가가 주창하는 소통의 모티브를 대변하는 키워드라고 믿는다. 이 말에서 파생, 분열되고 증식된 일상의 체험들이 수필집 전편에 포진해 있음을 확인시켜 줄 수도 있다. 앞서 작가가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는 한국어 교사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다문화가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 11편이나 무리지어 한 챕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전후를 살펴보면 한국어 교사라서 일군의 수필들을 만들었다기보다 이들 역시 ‘소통의 우산’ 아래 모여든 외로운 군상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혼 이주여성은 제각각 소통부재의 섬들이다. 이 섬들이 이 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 무수하게 ‘폭삭속아수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베트남에서 온 흐엉은 빨간 내복을 입고 마트에 장을 보러 다닌다. 닛찻산은 선생님을 대접한다고 딸기잼을 주스로 만들어 온다. 중국에서 온 산업연수생은 “쳐먹어라”고 음식을 권한다. 이미 신라국의 작가가 탐라국의 남편을 만나 익히 경험했던 바가 아니던가. 이런 체험들의 결합이 작가로 하여금 ‘소통’이라는 묵직한 담론에 몰입하게 한 근거가 아닐까 싶다.
5. 수필은 삶의 재현이고 해석이다. 수필집 모자이크에 드러난 이미경의 삶의 변주는 크게 두 가지로 귀착된다. 하나는 수필가로서 활동이요, 하나는 한국어교사로서의 역할이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온 작가가 여기에 이를 때까지의 다양한 편린들은 이미 작품 속에 녹아 있다. 분명한 것은 수필가로서의 그의 문학이 교사로서의 그의 삶이 한결 같이 외로운 섬과 섬을 잇는 소통의 모티브를 지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가의 삶은 현재형이고, 그의 수필도 진행형이다.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떤 길로 추동되고 그의 수필이 어떻게 그것들을 수렵할지 모를 일이다. 부디 그의 수필 기착지가 지금을 이어서 외로운 섬들을 잇는 소통의 한판 모자이크로 완성되길 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