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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로드 본문
블루로드 푸른색만큼 양면성을 가진 색이 또 있을까? 희망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색이다. 청운의 꿈이나 파랑새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차갑고 고요한 느낌 때문에 슬픔이나 우울을 상징하기도 한다. 흑인 영가처럼 슬픔이나 애환이 눅진하게 녹아나는 곡을 블루스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무거운 마음으로 블루로드를 걸으면 한 생각이다. 블루로드는 바다를 끼고 있는 둘레길 이름이다. 이름이 주는 어감처럼 숲길과 바윗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블루로드는 파도소리를 명상음악처럼 들으며 숲의 편안함에 젖어 걷는 길이지만 뜻밖의 바윗길을 만나 넘어질 수도 있는 인생길처럼 기복이 심하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바닷물에 까르르 웃음을 쏟아 놓는 햇빛이 은물결을 만들며 유혹을 하지만 그저 앞만 보고 걷는다. 바로 옆이 절벽이라 바다 풍경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산길로 접어들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바윗길을 걷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얼마쯤 가니 해국들이 바위틈 여기저기에 피어있다 애잔하게 지고 있는 산길이 다시 보인다. 한철, 보랏빛으로 청초하게 빛났던 꽃들은 이제는 찬바람에 소멸을 꿈꾸듯 푸석한 낯빛으로 주저앉아 있다. 빛바랜 해국에서 언니의 얼굴이 보인다. “그냥 이대로 죽고 싶어” 항암치료를 받고 나온 언니는 힘없이 말했다. 항암치료 후의 고통은 바늘 천 개가 동시에 찌르는 것 같고, 바닥에 사람을 내팽개치는 것 같은 고통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이 심하다는 뜻임을 알기에 먼저 운 사람은 나였다. 아프면 차라리 뒹굴고 울부짖으라고 소리쳤다. 언니는 우아하게 죽고 싶다고 말하며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면서 회오리바람이 드나들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앞에서 우아함이란 또 뭐란 말인가? 해국에 한 눈을 파는 사이 뒤따라오던 사람이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다리가 긴 남자는 CF 모델처럼 가파른 바윗길을 훌쩍 뛰어 내려가 내 눈앞에서 이내 사라진다. 산행이 서툴고 키가 작은 나는 손으로 바위를 짚기도 하고 난간에 쳐 놓은 밧줄을 잡으며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긴다. 좁고 험한 길이라 누군가 뒤에서 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 멋있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잔 걱정 같은 잔 돌까지 있어 조심조심 걸어야만 했다. 기품 있게 걷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다리가 짧은 내게는 욕심일 뿐이다.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누구에게는 폼 나는 길이 누구에게는 이처럼 힘이 들기도 한다. 낯설고 서투른 길도 가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인생이듯 초행이라 지형을 알 수 없었던 블루로드도 막상 걷다 보니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길로 이어지다가 곧 오르막이 나올 것이다. 그 오르막이 험난하게 올라야 할 바윗길인지 가뿐히 오를 수 있는 산길인지 알 수는 없어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잠시 멈춰 바다를 바라본다. 아득히 먼 바다 끝에서부터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고 있다. 앞서 밀려오던 파도가 주춤거리자 뒤따라오던 파도가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역동적인 모습이 아름다워 카메라를 누른다. 그러나 파도치는 동적인 아름다움을 정적인 사진으로는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다.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진은 실제의 모습만큼 아름답지 않다. 생동감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다. 엷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강한 바람이어야만 굼뜨게 움직이는 나뭇가지도 살아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가쁜 숨이 진정되면서 길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블루로드는 분명 아름다운 길이다. 단지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을 동시에 끼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바로 살아 꿈틀대는 동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산은 산대로 생성하고 쇠락하다 소멸하는 순환을 거듭하고 바닷속 또한 절기에 맞는 어종들이 상왕휴수(相旺休囚)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생의 순환에는 바람을 타고 오는 바닷소리 같은 희망과 비릿하고 아릿한 슬픔이 공존한다. 삶의 냄새가 블루로드를 적시고 있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죽음을 전제로 우아하게 죽고 싶다던 언니의 말이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말로 다시 해석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우아하려면 삶을 강하게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의 묘미를 느낄 때쯤 눈앞에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힘든 여정 중에 받는 선물이라 생각하며 맨발로 걸으려고 하는데 여기가 블루로드의 끝이라는 말이 들린다. 신을 벗는 대신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이렇게 짧은 길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찬찬히 둘러보며 올 것을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삶이란 왜 늘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항상 뒤 늦은 후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의 일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헉헉거리던 일도, 급경사진 길을 모양 빠지게 내려오던 일도 먼 일처럼 생각된다. 모든 것은 순간이고 다 아름답다. 하루 일과를 끝낸 태양이 붉은 달처럼 순하게 지고 있건만 나는 꿈을 꾼 듯 블루로드를 한동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