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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아빠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연이 아빠

소금인형 2016. 3. 28. 11:33

연이 아빠

 

늦은 밤 카톡소리가 들린다. 6개월 전 한국어 수업을 받은 캄보디아 새댁에게서 온 문자이다. 사진과 함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내 왔다. 사진은 셀프카메라로 찍은듯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새댁 뒤로 앉은뱅이 의자가 조그맣게 보인다.

한국어 수업이 종료된 후 안부를 묻는 학습자는 드물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학습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러 다니다 보면 세월이 손에 잡힌 미꾸라지처럼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눈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시절 인연으로 서로를 잊어 간다. 새댁 또한 그럴 줄 알았는데 문자를 받고 보니 기억의 저편에서 무채색으로 숨어 있던 그 날의 기억이 원색으로 되살아난다.

어느 날, 수업을 갔더니 방석 대신 앉은뱅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인지 새댁의 남편인 연이 아빠가 사놓은 의자였다. 연이 아빠는 스물한 살의 캄보디아 여성과 재혼한 한국 남자이다. 연이 아빠의 두 번째 결혼은 첫 번째 결혼과는 달리 결혼 정보업체를 통하지 않고 친구의 소개로 직접 캄보디아로 가서 몇 번 만나보고 이루어졌다.

깡촌에서 데려왔다는 연이 아빠의 두 번째 아내인 새댁은 초등학교를 2년 동안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여서 캄보디아 글도 완전하게 읽지 못했다. 게다가 공부하려는 의욕도 없고 방법도 몰랐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언어가 필수인데 이 철없는 새댁은 두 달째 가나다라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르칠 때면 알겠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며칠 후 다시 와서 물어보면 처음 보는 문자라는 표정을 짓기 일쑤여서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쩐 일로 가나다라’14자를 가리키는 대로 잘 읽는다 싶었더니 다리미의 와 가지의 는 읽지를 못했다. 새댁은 두 달 동안 글자를 읽히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글자는 네 번째는 식으로 순서만 외웠다

배우는 사람은 답답한 것이 없는 모양이지만 정작 가르치는 내가 안달이 났다. 어린 새가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듯 가르치는 대로 쏙쏙 받아들이는 학습자를 만나면 없던 힘도 나지만 새댁과의 수업은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갔다.

새댁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0개월이다.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배운다. 그동안 일상적인 말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새댁의 남편인 연이 아빠에게 가나다라를 뗄 때까지만이라도 집에서 복습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연이 아빠는 빨리 끓은 물이 빨리 식는다며 천천히 천천히 하자는 말만 했다. 말을 빨리 배웠다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진대 연이 아빠는 늘 이런 식으로 딴청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의사소통이 안 되어 답답한지 캄보디아어 공부를 하는 눈치였다.

연이 아빠가 그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 아내도 첫 번째 아내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을까 봐 능청을 떨었다.

소문으로는 첫 번째 아내였던 캄보디아 여성은 아주 예쁘고 똑똑했다. 하나를 가르치며 둘을 이해했으며, 한국 생활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아이 둘을 낳는 동안 한국 국적과 운전면허도 한 번에 통과하더니 돈을 벌겠다며 공장에 취직했다. 그 후 그의 아내는 산업연수생으로 온 캄보디아 남성과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

연이 아빠는 집착인지 미련인지 SNS를 통해 첫 번째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었다. 딸을 낳았으며 S시에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얼마나 잘사는지 두고 볼 거라는 원망의 말을 하며 두고 간 아이를 보란 듯이 잘 키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연이 아빠가가 두 번째 아내를 깡촌에서 맞이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연이 아빠의 처지는 알겠지만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해진 내가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댁에게 말로써 채찍질을 좀 했더니 쭉 찢어진 눈을 더 찢으며 흘겼다. 그 눈매가 어찌나 사납던지 당황스러웠다.

다시 연이 아빠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연이 아빠는 새댁 대신 미안해했다. 아내가 눈을 치켜뜨면 정말 못 돼 보이는 걸 안다며 자신도 간담이 서늘하다고 익살을 떨더니 앉은뱅이 의자를 사 놓은 것이다.

반듯한 다리가 없는 의자가 연아 아빠의 마음 같다. 사실 누구보다도 새댁이 한국말을 잘했으면 하는 사람이 연아 아빠일 것이다. 새댁에게 한국어를 조금만 봐주면 남편으로서 기도 살고 나 보기도 떳떳할 텐데 연아 아빠는 앉은뱅이 의자처럼 늘 미안해하며 몸을 낮추었다.

내가 앉은뱅이 의자에 앉던 날부터 새댁의 태도가 조금 고분고분해졌다. 수업하다가 싫은 내색을 하며 내 눈을 저돌적으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치켜뜨지도 않았다. 아마도 연이 아빠가 새댁을 많이 타이른 듯했다. 하지만 공부에는 여전히 진전이 없었다. 대신 가벼운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았다. 낯빛이 점점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이 되어 갔다.

이번에는 연이 아빠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새댁의 우울증을 염려했다. 한국에 온 후로 혼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캄보디아 수녀님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새댁을 거기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느고 연이 아빠에게 물었다. 그곳에는 다른 캄보디아 여성들도 많이 오니 친구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은 연이아빠는 흐려진 얼굴로 포기하는 것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병행할 거라는 내 답을 듣고서야 얼굴의 잿빛 구름이 걷혔다.

연이 아빠는 캄보디아 수녀님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에 남학생이 있는지부터 확인한 후 새댁을 그곳에 보냈다. 며칠 공부하고 온 새댁의 첫 말은 수녀님 무서워.”였다. 그 말을 하며 떠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수녀님이 공부하지 않는 새댁을 크게 꾸짖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새댁은 나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공부하는 방법이나 태도도 잡혔다. 하지만 어학에는 소질이 없는지 큰 발전이 없었다.

참으로 반갑다는 말과 잘 있느냐는 내 문자에 새댁은 묵묵부답이었다. “고마웠습니다가 아닌고맙습니다라는 현재 시제를 쓴 걸로 봐서 한국어 실력은 여전한모양이었다. 지금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을 새댁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밝게 웃고 있는 모습과 나에게 문자를 넣을 여유가 있다는 것으로 새댁의 안녕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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