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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본문
메르스
수업을 받는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를 두 주쯤 쉬게 하겠단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메르스가 걱정되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기는 하다. 낙타를 통해서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메르스가 모든 것을 묶어 놓고 있다.
서울 있는 친구 말로는 거리에 사람들도 다니지 않고 문을 닫은 식당이 많다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곳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말이 돌며 모두 조심하고 있다. 지도를 일시 중단하겠다는 사유서에 사인을 받아야 하니 오늘은 가서 수업하겠다고 했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대답은 오늘부터 수업하지 말고 사인은 내일 오후에 받으러 오라였다.
결혼 이주여성들의 자식 사랑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그녀들에게 자식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방(異邦)에서 유일하게 내 뱃속에서 나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이해하지만,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 사인 하나를 받기 위해 차로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일부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졌다.
아이 엄마는 일을 다닌다. 그래서 내가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려와 수업하고 있다. 엄마가 잔업이 있는 날이면 다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까지 한다. 내가 아이를 맡을 때 싫다고 했으면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다. 만약에 사고라도 나게 되면 곤란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데려오고 데려가는 시간도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이 꺼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 엄마는 그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운함이 자꾸 밀려왔다.
방문지도 일은 일정한 기간 내에 정해진 횟수를 채워야 한다. 아이들의 경우 수업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정되어 있어 보강하기가 무척 힘들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 일요일 오라고 하지만 내게도 개인적인 용무가 있고 대상자 역시 주말이 되면 볼일이 생기기 일쑤다.
토요일이 되어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일정한 기간 내에 수업횟수를 채워야 하는 것을 말하며 가는 걸음이니 수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어린이집에 전화해 놓겠다고 했다.
나를 본 아이는 반색을 하며 어제 왜 안 왔느냐고 물었다. 제 딴에는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수선한 세상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이의 미소가 해맑기만 해서 바빠서 못 와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이해했다. 수에 대한 개념도 빨랐고 한글의 받침도 한 번 가르쳐 주면 기억을 잘했다. 거기다가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아끼는 스티커를 붙여 사랑한다는 편지를 주기도 했다. 아이와의 수업은 늘 즐겁다. 그래서 서운했던 감정도 봄눈 녹듯 사라졌다.
수업이 끝나고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아이 엄마는 오지 않았다. 곧 오겠지 하며 또 이십 분이 흘렀다. 십 분이 더 지나서야 아이 엄마는 지친 얼굴로 들어 왔다.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 많을 거라는 말을 하며 아직 이곳은 안심 지역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수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보강하려면 일주일에 서너 번 수업해야 하는데 아이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이 엄마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나와 통화하는 내용을 엿들은 사장이 지금까지 나무랐다는 것이다. 사장은 메르스가 돈다는 이야기를 접한 후부터 아이를 단속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는 종일 어린이집에 있다가 엄마가 일을 마치면 집으로 가는 게 전부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아이가 다른 사람과 만나지 않도록 하라고 계속 주의를 시킨다고 했다.
열 명 남짓한 조그만 공장은 자유가 거의 없다 했다. 문자를 받거나 주는 것은 물론 전화통화는 아예 금지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이 엄마는 잔업이 있는 날이면 사장 눈을 피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다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내게 하곤 했다.
사장은 아이가 메르스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당장 다문화센터의 선생부터 방문을 막게 했다. 괜찮다는 아이 엄마에게 만약에 아이가 메르스에 걸리면 엄마가 걸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장을 닫아야 한다며 윽박질렀다. 지역에 없는 확진 환자까지 등장시키며 선생이 이집 저집 다니며 메르스를 묻혀 올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람이 병원균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이 엄마는 사장 몰래 수업하고 싶지만, 회사에 같이 일하는 여성이 일곱 명인데 아이들이 모두 같은 어린이집에 다녀서 그럴 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곳은 비밀이 없는 곳이라 했다. 어찌 아는지 사장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혹, 사장 말을 듣지 않다가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했다.
그동안 내가 아이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된 배경 중심에 사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기가 찼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은 공장을 지키기 위한 사장 나름의 방법이었겠지만 지나치다 싶었다. 내가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으면 당장 그딴 회사를 나오라고 하겠지만 그럴 힘이 내게는 없었다. 사유서에 사인을 받으며 사장에게 말을 전해 달라 했다.
“공장에서 메르스 옮겨올까 아이가 걱정되어 잠을 못 잔다고.”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이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일단 일주만 쉬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 했다.
진짜 무서워해야 할 것은 낙타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었다는 메르스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들 속에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장은 세련되지 못해서 자신의 속내를 들켰지만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감쪽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도시의 불신이 가득한 세상이야말로 바로 메르스의 진원지가 아닐까?
수필세계0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