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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 둥둥 본문
어화 둥둥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만 가르치던 내가 지난해부터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가르치게 되었다. 다문화 정책이 바뀐 까닭이다. 한국어 교사도 정해진 교육을 수료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다문화 가정 부모교육 서비스와 자녀생활 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사물을 바라보고 대화를 하다보면 팍팍한 삶에 온기가 돌 것도 같았다.
내가 만난 아이는 영희였다. 한 부모 가정의 아이였는데 아주 예쁜 얼굴에 필살기인 애교를 가지고 있었다. 아들만 둘 키워 본 나는 애교 많은 영희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영희는 똘망똘망하게 생겼다. 그런데 생긴 모습과 달리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듯 보였다.
1+1이 2라고 가르쳐도 영희는 계속 11이라고 했다. 아직 개념이 서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초콜릿을 가져가 이해를 시켜 개념은 겨우 세웠다. 그런데 영이는 특이하게도 며칠 뒤 가면 다시 1+1을 11이라고 했다. 수의 개념이 아직 완전하지 못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르쳤다.
그 정도로 문제를 풀게 하였으면 거의 외웠을 것이다. 순진하게도 나는 서 너 번을 그렇게 한 뒤에야 영희가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수업을 갔더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영희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으니 집이란다. 왜 문을 안 여냐며 문을 열라고 했더니 그제야 까르르 웃으며 금방 갈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20분이 훨씬 넘어 영희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들어 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희에게 수학 문제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답이 가관이었다. 2+3=23, 4+5=45 이런 식으로 답을 써 놓았다. 이게 정말 답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아주 천진난만한 얼굴로 맞잖아요 한다. 영희 앞에 초콜릿 10개를 내 놓으며 답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혼날 줄 알라며 엄포를 놓았다. 잠시 움찔하던 영희는 정말 몰라서 그렇게 썼다며 울기 시작했다.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 나에게 왜 믿지 않느냐며 따지기까지 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나무랐다. 네가 나를 놀려 먹는 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못된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했더니 이내 눈물을 거두고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나는 틈도 주지 않고 더 호되게 야단쳤다. 사람의 진심을 그렇게 받아들이면 너 주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다. 그리고 집에 없었으면 잠깐 놀러 나왔는데 가겠다고 말하면 될 일을 왜 매번 이런 식이냐고 나무랐다. 그 후로 영희는 조심하기는 했지만 가끔씩 저도 모르게 그 버릇이 불쑥불쑥 나오곤 했다.
영희는 받아쓰기도 거의 영점을 받아 왔다. 열심히 받아쓰기 연습을 시켜 학교에 보내도 영점을 받아오기 일쑤였다. 공부를 했는데 왜 이런 점수가 나왔냐고 물으면 공부한지가 한참 지났지 않느냐며 애교스런 표정으로 지었다.
지금까지 내 혈압은 평균 110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건강 검진을 했는데 혈압이 130으로 나왔다. 그것이 꼭 영희 땜에 열을 자주 받아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했는데 열 받을 때마다 속으로 어화둥둥 세 번을 하는 것이다. 어화둥둥은 노래를 하면서 어린아이를 달랠 때 하는 말이다. 아직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니 선생인 내가 금도를 베풀어야지.
그랬던 내가 결심 일주일 만에 여덟 살짜리 영희하고 기싸움을 했다. 그날도 영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했고 어화둥둥을 속으로 외치며 타이르는 나를 영희는 반항하듯 노려봤다. 어화둥둥은 잠시 접기로 했다. 나도 영희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영희는 웃음으로 모변하려는 듯 방긋 웃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내가 눈도 꿈쩍하지 않자 영희가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무서워서 우는 울음도, 민망해서 우는 울음도 아니었다. 억울해서 운 울음 소리였다.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울음소리가 잦아질 때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은 그대로 두지 않을 거라며 책을 펴라고 했다. 어화둥둥.
그 후에도 영희는 가끔씩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로 내 속을 여전히 뒤집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가 밉지 않지요?”하는 엉뚱한 말을 불쑥불쑥 던졌다.
“아니 선생님은 영희를 제일 사랑해” ‘ 어화둥둥’
오늘도 영희는 자신이 시험지를 계속 빵점 받아오면 내가 직장에서 잘릴 거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한다. 어화둥둥.
그딴 일로 잘릴지 않는다고 하자 선생님이 사장님이냐고 묻는다. 다문화 가정 방문 선생님들은 다 사장님이라 대답하자 이번에는 회장님은 없느냐고 묻는다. 어화둥둥.
아무래도 조만간 영희가 잘릴 것 같다고 하니 공부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며 책을 편다. 공부하기 싫으면 앞으로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거 그만 두겠다고 하니 무슨 심보인지 싫다며 펄쩍 펄쩍 뛰며 내 등에 착 달라붙는다. 그러더니 “선생님 미워”한다. 나도 네가 밉다했더니 전에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하며 눈을 흘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하니 입을 씰쭉거린다.
싸우면서 정든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작고 예쁜 물건이 보이면 영희가 먼저 생각이 난다. 밉다는 내말에 퉁퉁 부어 있는 영희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고운정보다 싸우면서 든 미운정이 더 깊고 진하다는 것을 어린 네가 어떻게 알겠니?
어화둥둥, 영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