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어저귀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어저귀

소금인형 2016. 3. 28. 11:36

어저귀

 

길모퉁이에 홀로 핀 어저귀에 한동안 눈길이 머문다. 남부 아시아가 고향인 꽃이 어찌하다 이역만리 내가 사는 동북녘 지역에 왔을까? 보도블록 좁은 땅에 싹을 낸 것이 어제인 듯한데 벌써 씨방이 맺혔다. 누군가의 밭에 무리를 지어 피었다면 지금쯤 한약재나 밧줄의 재료로 쓰임이 있을 텐데 도심 보도블록 사이에 핀 꽃이라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다.

아침 드라마를 보려고 리모컨을 누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서투른 발음으로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토아이다. 이미 본국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이다.

한국에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싸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간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파경을 맞아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단으로 들어가서 돈을 버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녀 또한 그런 모양이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과실나무에 전정을 하고 있었다, 마을의 첫 집인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앳된 얼굴의 토아가 나와 있었다, 더운 지방에서 와서 처음 맞는 한국의 겨울이 혹독했는지 얼굴이 파리했다.

봄이 와도 토아의 얼굴색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기도 전에 지는 꽃처럼 시름시름 앓았다. 볕이 들어오지 않는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웅크려 누워 있는 날이 잦아지더니 복통을 호소했다. 신경성 위염이라는 의사에 말에 열심히 병원에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토아의 남편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단지 배움이 짧아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탓에 외국에서 신부를 데려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신부를 데려온 터라

시골 본가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집 얻을 돈이 모이면 분가할 거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신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으니 신부는 이런 남편의 마음을 알 리 없었다. 만약에 알았더라면 상황이 달려졌을까?

토아의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남편을 따라 집으로 올 때부터였다 한다. 어쩌면 친정집과 별반 다름없는 풍경에 힘이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수업하던 토아가 물었다. 선생님도 집에 가면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느냐고.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국에는 인건비가 비싸서 대부분의 주부가 일과 가정 살림을 병행한다는 말도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녀가 한국으로 온 것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였다. 그녀가 본 드라마 속 한국 사람들의 삶은 윤택했다. 넓은 집과 세련된 의상, 가정부와 운전기사가 있었다. 드라마 속 세상이 한국인의 삶이라 생각한 20대의 철부지 아가씨는

밤마다 한국행을 꿈꾸었다,

스무 살이란 나이는 세상을 알기에는 부족한 나이였을까? 비실비실 말라가는 토아를 위해 점심값을 아껴가며 먹을 것을 사 나르던 남편의 사랑도 장에 갈 때마다 비싼 과일을 사다 놓던 시어머니의 사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토아의 남편에게서 온 전화를 받은 것은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요즘 들어 토아가 머리를 벽에 박으며 자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말이 안 통하니 그 속을 알 수 없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다문화센터에서 통역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상담한 토아는 시어머니도 남편도 다 잘해 주는데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자신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파경을 맞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토아의 노곤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서너 달 정도 인연 맺은 나를 떠올리고 전화를 했을까. 그냥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물설고 낯선 곳에서 밤새워 뒤척였을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 간다.

꽃은 작은 바람에도 몹시 흔들린다. 꽃자리를 두고 저리도 척박한 곳에 터를 잡은 것도 그녀의 운명이리라. 인도(人道)에 피어 사람들이 오고 갈 때마다 흔들리는 어저귀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의지할 곳이 없이 홀로 핀 모습이 처연하다. 작은 꽃 옆에 핀 커다란 잎이 그녀의 삶 무게처럼 느껴진다. 꽃자리를 박차고 나온 어저귀는 지금쯤 자신의 힘든 삶을 들여다보다 불현듯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설에 의하면 어저귀는 꽃의 왕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씨방을 왕관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를 안 신은 몹시 노하여 어저귀의 씨방 색깔을 초록에서 바로 새까맣게 변하게 했다. 어저귀의 씨방이 푸른색에서 이내 검게 변함은 그만큼 빨리 성숙한다는 것이리라. 토아가 세상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지만 지금의 고생이 그녀를 철들게 할 것도 같다. 뿌리가 내라는 곳이 어디든지 삶의 여건을 디딤돌로 만들며 잘 살기를 기원한다.

 

 

 

 

 

 

'소금인형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  (0) 2016.03.28
딸기잼 플러스 물  (0) 2016.03.28
어화 둥둥  (0) 2016.03.28
다문화가정 방문교사  (0) 2016.03.28
메르스  (0)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