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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방문교사 본문
다문화 가정 방문 교사
내가 일하는 곳은 경산시 다문화가족지원 센터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전국 217개가 있는데 한국어, 가족, 성평등, 인권, 사회통합 교육 및 상담과 정보 제공, 역량 강화지원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서 결혼이민자의 한국사회 조기적응 및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나는 결혼이주여성의 집을 방문하여 한국어와 문화 교육, 부모교육, 자녀생활지도, 상담 같은 것을 1:1로 맞춤 서비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결혼이민자 가정이 확산하게 된 것은 1980년도 후반 어느 종교집단의 대규모 국제결혼부터였다. 그 후 1992년 ‘세계화 추진 선언’ 이후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이 제도화되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수도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수교 이후 북한 탈주이주민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농촌 및 저소득층 미혼자와의 결혼 기피현상에 따른 국제결혼도 지속해서 증가했다. 이렇듯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어소통의 문제, 문화 적응 스트레스, 가치관의 차이, 성격 차이에서 오는 우울과 불안, 낮은 양육 효능감 같은 문제를 다문화 가정 내에서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이유로 2008년부터 가정방문 교사가 파견되었다.
가정방문 교사가 파견되기 전의 여성 결혼이민자는 주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에게 한국을 배웠다. 그러다보니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고 문화 또한 비교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를 따를 것을 강요받았다. 익숙하지 못한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이해 부족은 부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 원인이 되었다. 또한, 한국의 가족 구성원들도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래서 결혼 이민자가 친정집에 돈을 보낼 수밖에 없어 취업활동을 하려고 하면 시어머니나 남편이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민자가 생활 능력이 생겨서 남편이나 가정을 벗어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은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가출을 하게도 했다.
또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유아기에 한국어가 미숙한 외국인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므로 언어 발달 지체를 보이거나 문화 부적응으로 학교생활에 문제를 보였다. 이로 인해 정체성, 대인관계 형성 및 다른 학습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수업을 가면 월급을 많이 받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는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방문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녀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가 무척 궁금해진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하루 네 시간 수업하면 된다는 말이 무척 매력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두 집씩 방문하면 수업하는 시간은 네 시간이 맞지만, 학습자의 집이 대부분 외곽지라 이동시간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하루 수업한 것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하루 8시간 근무인 셈이다.
내 학습자는 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더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손님에게 방석을 내어 주는 일은 아주 드물다. 딱딱한 방바닥에 작은 상을 펴 놓고 두 시간 동안 수업하자면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어쩌다 식탁이 있는 집이 있어 식탁으로 유도해 보기도 하지만 입식 생활이 불편한지 괜찮다는 말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하지 않아 엉망인 집도 있고, 자다가 부스스 일어나 잠옷을 입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어 수업을 가면 이런 일이 많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 대부분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신부들(대부분 20대)이라 그렇거니 이해한다. 자녀생활지도나 부모교육을 하는 경우는 이주 여성들이 어느 정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어서 덜하기는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내 모습을 본다면 외판원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모습이다. 동화책이나 교구 등을 한 아름씩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내 옷차림새도 많이 변했다. 원피스 입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편한 바지와 티셔츠를 주로 입고 다닌다.
방문선생님들은 학사 이상의 전공자들이다. 선배 교사의 말에 따르면 8년 동안 급여가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유일무이한 곳이란다. 신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어 교사 치우고 학교 방과후수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 친구에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좋다 나쁘다 말 한 적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말에 잠시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대구가 고향인 내가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 겪은 문화적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인간의 행동 양식은 사회적 환경의 적응을 반영하는 것임에도 무의식적으로 경상도 잣대로만 제주 문화를 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면서 알게 되었다.
상당수의 이주여성이 한국문화 중 가부장제도에서 오는 며느리의 업무 과중과 장남 위주의 문화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전통적으로 막내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하는 순서로 분가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 발자국 뒤로 서서 보면 한국의 장남 위주의 문화보다는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가르쳤던 학습자는 집안 일이 온전히 여자들의 몫이라는 점이 이해하기 어렵고 부당하다며 시어머니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시어머니는 집안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남편이 도와주는 것도 말린다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자신이 가정부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그러는 것이 자신이 외국 며느리라서 그런 것 같다며 울먹였다. 시어머니와 이주 여성 사이를 오가며 문화의 다름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지만, 화해와 관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요즘 내가 자주 듣는 노래 중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는 가사가 나온다. 열매가 익어가기 위해 비, 바람, 햇빛과 더불어 시간이 필요 하듯 나 또한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곱게 익어 가기를 꿈꾼다. 사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참고, 기다려주고,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힘든 일이다. 나도 함께 성장하고 있기에 이 일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