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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본문
고인돌 앞에서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숲인 아파트 안의 고인돌 앞에 서 있다. 기원전 2000년 전, 이곳은 움집이 나란히 어깨걸이하고 있던 정겨운 촌락이었으리라.
네 개의 바위는 아파트 한 쪽 귀퉁이에 있었던 까닭에 이사 온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 눈에 띄었다.‘지석묘군’이라는 안내 표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조경의 일부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던 바위가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시선이 끌렸다. 어느 날은 무심히 지나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걸음을 멈추고 그것들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천 년 전의 무덤과 현대의 삶이 공존하는 곳에 있으니 삶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윤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쯤에서 내 아비의 아비가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을 가두어 길들이고 있었을 테고, 이쯤에선 내 어미의 어미가 곡식이 바닥난 무늬 없는 토기를 긁고 있었을 테지. 순한 짐승도 자유로이 놓아둘 때 순한 법이라. 눈치 빠른 짐승 가두는 게 싫어 목숨 걸고 물어뜯어 아비의 아비 몸에 시뻘건 피가 뚝뚝 흘렀을 테지. 빈 독 긁던 어미의 어미가 놀라 허둥대는 발길에 민무늬 토기 와장창 소리 내며 쓰러졌을 테고 그 소리에 생각 없이 불던 바람 무슨 일인가 하여 기웃거렸을 테지.
짐승에 놀란 아비의 아비 몇 날 며칠 소리 지를 때마다 어미의 어미 날카로운 반달모양 칼 들고 약초 찾아 길 나섰겠지. 우렛소리에 놀라고 짐승 소리에 놀랄 때마다 내 어미의 어미 커다란 바위에 기대며 파닥되는 가슴 진정시켰으리라.
아비의 아비 꿈속은 밤낮으로 낯선 짐승 어슬렁대었을 테지. 그러다 끝내 그 악몽 떨쳐버리지 못하고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되어 푸드덕 날아올랐을 게다.
삶과 죽음의 공존은 불멸이다. 죽음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늘 죽음 앞에서는 당황한다. 어제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던 친구의 부음이 오늘 느닷없이 전해졌고 걸어 병원 간 아버지가 거짓말처럼 이 세상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산다는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외줄 타기였다.
울타리 너머의 저쪽에는 커다란 바위 네 개가 무심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고 보고 몇 그루의 소나무가 그 곁에서 살랑 살랑거린다. 어디선가 나타난 청솔모 한 마리 바위에서 쫑긋거리다 나무 위로 쪼르륵, 돌무덤 속 전령인가? 저 무덤 속 주인의 생전 삶은 그리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숨죽여야 했고 집 밖에서 늘 으르렁대는 낯선 짐승 소리에 깊은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피곤한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 한없이 무겁고 무거웠을진대 죽어서까지도 저렇게 무거운 돌 떠받치고 있으니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갑자기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멘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죽으면 화장을 하라 당부하셨다. 그 의미가 강이나 산에 뿌려져 자유로이 살고 싶다는 의미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반의 반 평도 채 안 되는 추모공원에 모셨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기에 살아있는 사람 위주로 행해졌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자주 보기위해 시설 좋고 전망도 좋은 곳에 모셔놓았다. 그리고 자주 찾아뵐 수 있다는 것에 위로로 삼았다. 그것으로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조금 희석시켰다.
평생 돌도끼 하나에 목숨 맡기며 사느라 가슴 조이며 살다간 지아비가 가엾어 어미의 어미는 꺼이꺼이 울었겠지. 그때 환영처럼 스친 커다란 바위 하나. 지아비가 더 이상 놀라지 않게 어미의 어미는 커다란 바윗돌 하나 가슴에 지그시 눌러 주고 싶었지. 허나 태산 같은 바위 어떻게 옮겨오나, 어미의 어미 지아비가 남겨놓은 돌칼, 돌도끼에 아끼던 청동거울까지 꺼내 놓으며 사람들에게 부탁했지.
남의 일 같지 않은 상황에 이심전심으로 눈물짓던 사람들은 바윗돌 옮길 지혜를 모았을 테지.
아버지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잠들고 계실까? 유택이 조금 못마땅한 대신 자식들이 자주 오니 덜 외롭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실까? 아니면 바람 같은 자유를 꿈꾸며 우리를 괘씸하게 생각하실까? 살아생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하셨으니 어쩌면 잘 적응하며 지낼 것이라 믿고 싶다.
고인돌 앞을 지날 때마다 바위가 아닌 흙무덤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을 종종 품었다. 그랬다면 지금은 흔적조차 없을 것이다. 가엾은 저 넋들 쉴 자리 잃어 바람에 통곡 소리 실어 보내지는 않았을까.
어느덧 하루의 노동에 지친 해가 귀가를 서두른다. 영혼들이 잠든 집에도 사람들이 사는 집에도 서서히 어둑살이 내린다. 자동차 불빛이 하나둘 아파트로 들어오고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녹록하지 않은 게 삶인가 보다. 누군가가 쏜 화살과 휘두르는 검을 피하느라 진을 다 뺀 모습이다. 서늘한 바람이 볼에 스친다. 모든 것이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삶은 여전히 고달픈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