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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살아간다는 것은 본문

푸른 노트

작가의 방-살아간다는 것은

소금인형 2016. 9. 18. 11:14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경

 

가끔 오르는 산에는 와목이 있다. 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려지자 다섯 개의 가지가 위로 뻗으면서 튼튼한 나무가 된 것이다. 나무로서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했을 것이다. 누워서 자라는 나무를 보며 세상의 모든 만물은 자기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은 주방이다. 그곳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은 퇴근 후에 집에 와서 한두 시간 더 일해야 마무리된다.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그날 가르친 내용과 특이 사항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내일 가르쳐야 할 자료들을 출력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이 퇴근 시간은 늘 저녁 시간과 맞물리기 일쑤이다. 나 또한 주부이므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생각 끝에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컴퓨터를 주방으로 옮겼다. DB 저장을 하면서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 상태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글쓰기 공간도 자연히 주방이 되어 버렸다. 구수한 밥 냄새가 밴 나만의 공간에서 냄비에서 물이 끓을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꽤 괜찮다. 차를 끓이거나 간식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컴퓨터를 주방으로 옮긴 다음 생긴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소재에 감흥이 일어나면 밥이 끓을 동안 문장을 만들어 워드로 치기 시작한다. 두드리는 자판 소리에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더 해지는 시간,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 온전한 눈과 귀가 있어 느낌만으로도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음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어디 눈과 귀뿐인가 건강한 신체를 가졌으니 거기에 걸맞게 마음도 잘 닦아 비추어야겠다는 착한 생각도 덩달아 들게 한다.

 

글이 잘 풀리지 않거나 눈이 유독 피로한 날은 거실 소파로 간다. 그냥 편안한 자세로 사색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머리를 식힌다. 때때로 이러한 일들이 글쓰기의 연장선이 되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나 텔레비전의 화면이 글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소파에서 설핏 잠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한기를 여러 번 느꼈다. 그래서 소파 위에는 늘 러그를 깔아 놓는다. 추우면 잠결에 러그를 당겨 덮으면 이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글신’이라도 접신한 듯 문장이 술술 풀리는 경험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런 날은 ‘글밥’만으로도 배가 부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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