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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들이면서 본문

소금인형 수필2

고양이를 들이면서

소금인형 2017. 11. 3. 20:21

고양이를 들이면서 /이미경  


살다 보면 뜻밖의 일을 만나게 된다. 좋은 일이면 반갑기 그지없겠지만 일상의 걸림돌이라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나는 지금 느닷없이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일찍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한 달 전의 일이다. 아들이 사는 원룸을 방문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좁은 공간에 여섯 마리 고양이가 고물거리고 있었다. 아들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길에 버려지게 될 처지라 거두었다 했다. 딱한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씀씀이가 대견해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새끼를 밴 고양이인 줄은 몰랐다. 어미가 된 고양이는 낯선 내가 새끼를 해칠까 불안한 눈빛으로 야옹거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았다. 아들에게 고양이 수명을 물었다. 생명을 거두는 데 드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20년 정도 된다고 말한 아들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네 마리는 분양이 된 상태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리 키우는 것보다 두 마리 키우면 고양이가 덜 외로울 것 같아 앞으로는 두 마리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새끼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어미의 중성화 수술 때문이었다. 새끼 고양이 때문에 어미가 쉴 수가 없어 회복이 더뎌진다 했다.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새끼 고양이를 들여다볼 것이니 아무 걱정을 말라며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들의 말과는 달리 고양이가 거실로 나오기라도 하면 나는 식겁하며 달아났다. 시간이 흐르자 새끼 고양이는 적응이 되었는지 도망가는 나를 왜 저러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며칠 뒤에는 새끼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며 어미 고양이를 집에 두고 갔다. 어미 고양이는 이틀 동안 제 방에서 꼼짝 않고 있더니 사흘이 되어서는 거실로 나와 돌아다녔다. 마주칠 때마다 얼음이 된 나와는 달리 고양이는 제가 주인인 양 당당했다. 새끼 고양이까지 돌아오자 둘은 기세등등하게 소파를 차지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아들이 어서 빨리 고양이를 데려가기를 학수고대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발목을 잡았다. 고양이가 요물이니 어쩌니 하던 사람이 고양이 귀여움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남편은 아들에게 좁은 원룸에서 고양이가 답답해할 것이라며 집에서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들도 일손을 덜었는지 얼씨구나 좋다 했다.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팔자에 없는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온몸이 털인 고양이의 털 빠짐은 예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주 빗겨주고 집안은 수시로 청소기를 돌려야 했다. 아침저녁으로는 고양이 화장실을 돌봐야 했고 밥그릇을 씻고 물과 사료를 준비해야 했다. 고양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걸림돌이었다. 예민한 동물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틈만 보이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반항하듯 소파를 긁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제재를 했다. 때때로 소리도 높였다. 상대보다 내가 힘이 더 세다는 이유로 내 소리는 점점 커졌다. 고양이도 질세라 이빨을 드러내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았다. 고양이를 품는 도리밖에 없었다. 고양이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면서 고양이가 겁 많은 동물인 것을 알았다.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자기를 방어하는 행동이었다. 사람의 손길을 원하면서도 오히려 사람을 피해서 관찰하는 여리디여린 존재였다. 세 살짜리 아이 같았다. 고양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깊어지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이 보였다. 자동차 아래, 전봇대 뒤, 담장 위에 고양이가 있었다. 주변에 고양이가 이렇게 많은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동안 한쪽 눈을 감고 산 것 같았다. 살면서 무관심으로 놓쳐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좀 더 많은 것에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봤더라면 지금보다는 삶의 폭이 훨씬 더 넓어졌음은 분명한 일이다.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고양이는 다른 종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징검다리였다. 지금 고양이는 정물 같았던 우리 집 풍경을 생동감으로 채색하고 있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 모자(母子)가 서로를 품으며 곤히 자는 모습이나 다리를 쭉 뻗으며 도도하게 걷는 고양이를 볼 때면 한없이 예쁘다. 집안의 기(氣)가 돌아서일까? 가족 간의 대화도 많아졌다. 한때 고양이를 약한 상대로 이해하기보다는 행동적, 언어적 폭력으로 내가 만든 틀에 가두려 했던 것이 미안하다. 상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을,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인 것을 깨닫는다. 고양이를 들이면서 비로소 성숙한 인간이 되는 느낌이다.

2017년 선수필 겨울호


고양이를 들이면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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