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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의자 본문

소금인형 수필2

앉은뱅이 의자

소금인형 2017. 10. 3. 10:10


앉은뱅이 의자 (2).hwp

앉은뱅이 의자 / 이미경  

늦은 밤 ‘카톡’소리가 들린다. 3년 전 한국어 수업을 종료한 베트남 새댁에게서 온 문자이다. 사진과 함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내 왔다. 사진은 셀프카메라로 찍은 듯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새댁 뒤로 앉은뱅이 의자가 조그맣게 보인다. 한국어 수업이 종료된 후 안부를 묻는 학습자는 드물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학습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러 다니다 보면 세월이 손에 잡힌 모래 마냥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눈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시절 인연으로 서로를 잊어 가는 경우가 많다. 새댁 또한 그럴 줄 알았는데 문자를 받고 보니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던 기억 하나가 원색으로 되살아난다.

어느 날, 수업을 갔더니 방석 대신 앉은뱅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인지 새댁의 남편인 연이 아빠가 사다 놓은 의자였다.  연이 아빠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스물한 살의 베트남 여성과 재혼한 한국 남자이다. 풍문에 의하면 첫 번째 아내였던 베트남 여성은 아주 예쁘고 똑똑했다 한다. 하나를 가르치며 둘을 이해했으며, 한국 생활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아이 둘을 낳고 사는 동안 한국 국적과 운전면허도 한 번에 통과하더니 돈을 벌겠다며 나가서는 마음이 돌아섰다.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깡촌에서 직접 데려왔다는 연이 아빠의 두 번째 아내인 새댁은 초등학교를 2년 동안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여서 베트남 글도 완전하게 읽지 못했다. 게다가 공부하려는 의욕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언어가 필수인데 이 철없는 새댁은 두 달째 ‘가나다라’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르칠 때면 알겠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며칠 후 다시 와서 물어보면 처음 보는 문자라는 표정을 짓기 일쑤여서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배우는 사람은 답답한 것이 없는 모양이지만 정작 가르치는 내가 안달이 났다. 어린 새가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듯 가르치는 대로 쏙쏙 받아들이는 학습자를 만나면 없던 힘도 나지만 새댁과의 수업은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갔다. 수업 기간인 10개월 동안 새댁이 열심히 해서 일상적인 말을 어느 정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서 새댁의 남편인 연이 아빠에게 ‘가나다라’를 뗄 때까지만이라도 집에서 복습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연이 아빠는 빨리 끓은 물이 빨리 식는다며 천천히 천천히 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말을 빨리 배웠다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진대 연이 아빠는 늘 이런 식으로 딴청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의사소통이 안 되어 답답한지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눈치였다. 물론 연이 아빠가 이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다. 첫 번째 아내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연이 아빠는 집착인지 미련인지 SNS를 통해 첫 번째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었다. 재혼해서 딸을 낳았으며 S 시에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얼마나 잘사는지 두고 볼 거라는 원망의 말을 하며 두고 간 아이를 보란 듯이 잘 키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연이 아빠의 처지는 알겠지만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해진 내가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댁에게 말로써 채찍질을 좀 했더니 쭉 찢어진 눈을 더 찢으며 흘겼다. 그 눈매가 어찌나 사납든지 당황스러웠다. 다시 연이 아빠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연이 아빠는 새댁 대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아내가 눈을 치켜뜨면 정말 못 돼 보이는 걸 안다며 자신도 간담이 서늘하다고 익살을 떨더니 앉은뱅이 의자를 사 놓은 것이다. 그때 나는 다리를 잃어버린 의자가 꼭 이들 부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는 몸통 아래에 붙어서 서고 걷고 뛰는 일 따위를 하거나 물체를 받치거나 직접 땅에 닿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관계를 이어 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첫 결혼이라는 다리를 잃어버린 연이 아빠, 번듯하게 받쳐줄 배경이 없는 새댁 그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로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잘 살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 히는 방문지도사이다. 의자가 권력을 드러내는 상징물이어서 일까? 내가 앉은뱅이 의자에 앉던 날부터 새댁의 태도가 조금 고분고분해졌다. 수업하다가 싫은 내색을 하며 내 눈을 저돌적으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치켜뜨지도 않았다. 아마도 연이 아빠가 새댁을 타이른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에는 여전히 진전이 없었다. 대신 가벼운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았다. 낯빛이 점점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이 되어 갔다. 이번에는 연이 아빠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새댁의 우울증을 염려했다. 한국에 온 후로 혼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수소문 끝에 베트남 수녀님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을 알아냈다. 그곳에서 베트남 친구도 사귀고 베트남어로 어휘와 문법을 들으면 훨씬 빨리 한국어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이 아빠에게 새댁을 그곳에 보내자는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연이 아빠는 흐려진 얼굴로 새댁의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병행할 거라는 내 답을 듣고서야 얼굴의 잿빛 구름이 걷혔다. 연이 아빠는 그곳에 남학생이 있는지부터 확인한 후 새댁을 보냈다. 며칠 공부하고 온 새댁이 나에게 한 첫 말은 “수녀님 무서워.”였다. 그 말을 하며 떠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수녀님이 공부하지 않는 새댁을 크게 꾸짖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새댁은 나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공부하는 방법이나 태도도 잡혔다. 아주 서서히 한국어 실력도 늘어갔다.  
참으로 반갑다는 말과 잘 있느냐는 내 문자에 새댁은 묵묵부답이었다. “고마웠습니다”가 아닌“고맙습니다”라는 현재 시제를 쓴 거로 봐서 한국어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남편에게 묻고 있을 새댁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밝게 웃고 있는 모습과 나에게 문자를 넣을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새댁이 한국에 잘 정착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확신한다.
 2017 대구문학9~10호


앉은뱅이 의자 (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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