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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항 본문

소금인형 수필2

엄마의 공항

소금인형 2018. 2. 4. 11:10



엄마의 공항 /이미경

눈이다. 함박눈이 온다. 시나브로 빠르고 경쾌하게 쏟아진다. 흰 물감 듬뿍 머금은 붓이 세상을 터치하는 것 같다. 앙상했던 가지에 하얀 살이 오르면서 통통해지고 사철 푸른 나무에는 포슬포슬 눈꽃들이 피어난다. 노란 쓰레기 분리수거함에도 헐벗은 화단에도 눈이 덮인다. 푹푹 나리는 눈에 울퉁불퉁했던 길이 한순간 평평해진다. 모든 것들이 눈에 가려져 하얀색만이 존재한다.

눈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텔레비전의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의 기억 속에도 눈이 내렸는가? 마취에서 깨어난 엄마의 모습이 낯설다 못해 당황스럽다. 여기가 어디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엄마는 공항이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반응에 나와 동생이 놀란 눈빛을 교환한다. 알록달록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엄마의 말은 확신에 차 있다. 분명 멀쩡한 정신으로 병원에 왔는데 이곳을 모르다니 너무 놀란 탓에 주위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면서 내 기억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오전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입국한 지 두어 달 된 캄보디아 새댁에게 어휘를 가르치고 있었다. 캄보디아에는 없는 말이라 휴대폰으로 적당한 사진을 찾고 있는데 벨 소리와 함께 동생 이름이 화면에 떴다.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심장에서 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지금까지 아파하며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오래전 뇌졸중으로 왼쪽 팔다리가 불편한 상태다. 그래도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보조차에 의존하면 걸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병원으로 옮긴 엄마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퇴골이 바스러져 있었다. 뼈에는 철심을 박아야 했고 고관절은 인공관절로 바꾸어야 했다. 엄마의 소식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려했다. 노인이 대퇴골을 다쳐 누우면 일어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침대 위의 삶요양원 봉사를 갔을 때 보았던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걸을 수 없다는 것은얼은 붙은 삶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침대 위에서 해결했다. 그나마 손이 자유로운 사람은 밥이라도 떠먹지만, 그것조차도 안 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고 있었다. 내 몸이라도 내 몸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술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어머니는 기진맥진했다. 신경은 예민해져서 작은 소리에도 크게 반응을 했다. 그렇지만 정신은 맑아서 서울에 있는 아들 걱정부터 했다. 거리도 멀고 바쁠 테니 내려오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혹 내려온다고 하면 못 오게 말리라는 말까지 나에게 부탁했다. 그랬던 엄마가 병원을 공항으로 착각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나는 무척 난감하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여든 넘게 살아오는 동안 씨실과 날실로 짜인 많은 기억이 있을 터이다. 다른 기억들은 어디에다 두고 왜 여행가는 기억 하나만을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비행기를 타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 영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 내가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여기가 공항이 맞느냐고. 내 모습을 본 간호사가 노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섬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서서히 괜찮아질 거라 한다.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참 쓸쓸해 보인다. 주름진 골골이 외롭고 허전한 바람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보는 데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나와 여동생 셋은 모녀 여행을 계획했었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해외로 나가서 많은 추억을 만들 생각이었다. 엄마는 돈이 많이 들 텐데 무엇하러 그러냐고 하면서도 아주 기뻐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많이 설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엄마의 여권을 만들고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그곳 나라의 날씨를 물으며 장롱을 활짝 열어 입고갈 옷을 고르기도 했었다. 짬짬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딸들이 귀찮게 한다는 말로 은근슬쩍 여행가는 자랑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며칠 앞두고 엄마가 쓰러지면서 여행은 좌절되었다.

아마도 엄마 얼굴은 그때부터 손톱만큼씩 쓸쓸해져 갔을 것이다. 엄마는 걷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춥다고, 덥다고, 바람 분다고 말려도 하루에 한두 번씩 지팡이와 보행보조차를 가지고 나갔다. 몸이 불편한 만큼 떠나고 싶다는 바람()의 크기가 커져서 그렇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멀리 여행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일로 수술을 받으면서 엄마는 여행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면서 섬망의 공항에 자신을 가둔 것이리라.

여행자 대열에 낀 것으로 아는 엄마의 얼굴이 복숭앗빛으로 상기되어 간다. 지금쯤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륙한 비행기 창너머로 미니어처 같은 세상을 보고 있을까?  눈앞에 하얗게 펼쳐진 구름을 보고 있을까.아니면 낯선 거리에서 꽃 모자를 쓰고 웃고 있을까.

엄마의 기억 속에 내리는 눈이 엄마를 섬망의 공항에 가두어 놓았다. 어서 빨리 눈이 그쳐서 엄마가 선망의 공항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 본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눈은 모든것을 가려 한가지 색만 존재하게 한다. 우리 모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이승의 공항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하지만 눈은 언제가는 그칠것을 알기에 엄마의 손을 잡으며 힘 내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갑자기 주머니 속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친구의 문자다한 달 뒤에 떠나는 중국 여행 상품이 좋은 가격으로 나왔으니 같이 가잔다섬망의 공항에 갇힌 엄마를 보며 나는 잠시 망설인다현재로서는 나 혼자서 좋아하며 여행 다니기가 죄스럽다그것도 잠시 역설적으로 건강할 때 여행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눈이 온다. 친구에게 가겠다는 문자를 보낸다.


엄마의 공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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