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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녀와 나무꾼 본문
선녀와 나무꾼/ 이미경
옛날 옛적에 우매한 선녀가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기고 천상의 질서를 어지럽힌 일이 있었다. 화가 난 옥황황제는 선녀를 동남쪽 나라의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게 했다. 날개옷을 하늘에 두고 온 선녀는 날개옷이 너무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 산다는 이웃 동북쪽 나라의 나무꾼에게 눈길을 돌렸다. 혹 나무꾼이 날개옷을 구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결혼을 했다.
내가 수업을 하러 가는 선녀이야기다. 나는 선녀에게 나무꾼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다. 요즘은 선녀 집에 가면 선녀 눈치부터 살피게 된다. 선녀가 자주 눈물을 짓기 때문이다. 그 옛날 선녀는 나무꾼이 날개옷을 숨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무꾼을 따라갔지만, 지금의 선녀는 스스로 나무꾼을 선택했다. 그래서 사는 방식이야 다르겠지만 아들딸 낳고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조용한 날이 드물다.
사실 나무꾼에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지금의 선녀가 첫 번째 부인이 아니다. 나무꾼은 번듯한 직장인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배필을 구하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고향이 먼 나라라는 선녀와 맺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육 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상심한 나무꾼은 몇 달을 술로 지새우며 파탄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낸 뒤 무심히 바라보는 하늘에 물체 하나가 지나갔다. 비행기였다. 나무꾼의 돈으로 아내가 고향으로 되돌아갈 때 타고 간 비행기였다. 그 일로 나무꾼은 돈이 선녀의 날개옷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무꾼은 첫 결혼 실패의 아픔을 뒤로하고 재혼을 했다. 바로 내가 수업을 하는 그 선녀이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 다짐도 했다. 하지만 선녀가 눈물로 나를 맞이하는 일이 잦으니 어찌하랴. 경험상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파국으로 끝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나무꾼에게는 철칙이 있는데 선녀에게 필요한 물건은 사주지만 돈은 주지 않는 것이다. 선녀의 날개옷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방책이다.
며칠 전에도 선녀가 나를 보자마자 울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할 때 가져온 돈이 있었는데 이를 안 나무꾼이 빌려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석 달이 되도록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무꾼은 반듯한 자기 집이 있고 적지 않은 월급도 받고 있었다. 결코 돈이 없어서 빌려 간 것은 아니었다.
몇 시간 전에 나무꾼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녀의 전화를 받았는데 배가 아프다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바빠서 그런다며 미안하지만 한 번만 선녀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선녀는 이제 막 임신 4개월로 접어든 임신부이다. 첫아이를 사산한 일이 있기에 연락을 받은 나는 몹시 놀라서 허둥댔다. 선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배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선녀는 배가 아픈 게 아니라 태동이 안 느껴진다고 했다. 임신 4개월 초에 태동이라니! 나무꾼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됨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나무꾼은 병원에 가 줄 것을 재차 부탁했다. 지난밤 꿈자리가 사나웠고 정기 검진할 때도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돈이 없을거라며 나에게 병원비 대납을 부탁했다.
병원으로 가보니 나무꾼의 말과는 다르게 선녀는 이미 사흘 전에 정기검진을 받은 상태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진찰을 다 받고 병원비 계산을 할 때야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다. 내가 병원비를 내려고 할 때 선녀가 재빠르게 돈을 내었다. 일주일 전에 친정어머니가 보내 준 돈이라 했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무꾼이 아느냐고 물었다. 선녀는 오늘 아침에 나무꾼이 알았다고 했다. 나무꾼은 어떻게든 선녀의 돈을 없애는 것으로 날개옷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나무꾼의 행동이 애처로워 보여야 하는데 슬금슬금 화가 났다.
선녀와 병원에 오는 내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임신부를 태웠기에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신경을 쓰며 왔더니 병원에 도착해서는 기가 다 빠져서 맥을 못 추출 정도였다. 나무꾼이 오늘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에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나를 동원한 것이 괘씸했다.
비를 핑계 삼아 우리는 말없이 병원 로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녀의 마음인양 여전히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까지 친다. 영리한 선녀가 이미 나무꾼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하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선녀 얼굴이 몹시 씁쓸해 보인다. 수업시간마다 선녀가 내비친 마음 조각들을 모아 보면 나무꾼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과 믿음이었다.
그 옛날, 선녀가 아이 셋 낳았을 때 날개옷을 주었더라면 정말 하늘로 가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선녀가 떠난 것은 나무꾼과의 생활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지 날개옷 때문이 아니었다. 현실에 만족했다면 날개옷이 있어도 선녀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꾼은 선녀를 믿고 날개옷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아는 한 선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쓰는 선녀와 나무꾼의 결말은 나무꾼이 아들 딸 손잡고 선녀 고향에 다녀오는 따뜻한 그림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수필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