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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사라 본문
압사라/이미경
친구가 동남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사진작가인 친구는 찍어온 사진을 보라며 디지털카메라를 내게 내민다. 앙코르와트에서 찍었다는 압사라 춤을 추고 있는 무희의 사진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압사라는 천상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한다.
잘록한 허리에 볼륨감 있는 몸매, 손목과 다리를 구부린 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압사라 춤은 본시부터 손가락과 몸동작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무희는 나이가 들어 목에 주름지거나 배가 나오면 무대에 설 수가 없다. 섬세하고 우아한 천상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희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춤을 추고 있는 무희를 보는 순간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착각이 든다. 오래전 동남아 여행을 했으나 압사라 춤 구경은 하지 않았다. 설령 압사라 춤을 봤다 하더라도 사진 속의 무희를 만날 확률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정도가 될 터이다. 무희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마음까지는 알 길이 없다. 무희의 손 모양을 유심히 본다. 무희의 손 모양은 모두 다르다. 무희가 추고 있는 춤도 처음 바탕은 언어가 발전하지 못한 때에 의사나 감정, 생각을 주고받은 도구였을 것이다. 보디랭귀지라는 것이 공통으로 통하는 것이 있으므로 무희의 몸짓을 읽는 데 집중한다.
나는 직업상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을 상대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보디랭귀지에 관심이 많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게 얼굴이지만 무표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굴 표정 대신 몸짓 손짓 언어에 집중하다 보면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읽힌다.
무희를 찬찬히 바라보는데 기억의 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무희를 보는 순간 많이 본 듯한 착각을 했던 것은 무희를 본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닮은 사람이 있었다. 웃는 입매와 눈매가 많이 닮았다.
짠티를 처음 보던 날 잠시 멍해있었다. 미모가 완벽에 가까웠다. 이목구비의 비율도 거의 완벽해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보는 것 같았다. 8등신의 몸매에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하늘하늘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참으로 청순했다. 나를 바라보며 엷게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미소에 답을 못하고 있었다. 왠지 그녀가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짠티 시어머니께서 따라왔다. 심사숙고해서 골라온 며느리라며 잘 가르쳐달라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짠티가 한국에 와서 한 달 만에 가출했다가 7개월 후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짠티를 보며 막연히 들었던 불안함이 기우이기를 바랐다. 경험상 한 번 집을 나간 사람은 대부분 또 집을 나갔다.
짠티 부모님은 캄보디아의 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가난한 살림임에도 딸인 짠티를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냈다. 시부모님은 잔티 부모님의 교육열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은 대학을 나왔지만 그런 정성으로 키운 딸이라면 딱히 나무랄 데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짠티의 시댁은 부농이었다. 아들이 결혼하자 시내에 아파트를 사서 분가를 시켰다. 잔티 남편은 아침에 본가로 출근해서 농사를 짓다가 저녁이면 시내에 있는 집으로 퇴근을 했다. 짠티도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가지만 시어머니가 해놓은 아침을 먹고 종일 집에서 쉬었다. 시부모께 딸보다 더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수업하러 가는 날은 짠티가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날개 같은 원피스를 입고 금으로 된 귀걸이와 목걸이에 10개쯤 되는 링 팔찌를 하고 기다렸다. 가끔 수업이 힘들다는 듯이 두 손을 위로 뻗곤 했는데 그 모습이 꼭 압사라 같았다. 나는 그녀의 삶이 평안하리라 생각했었다. 늘 입기에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짠티의 가출로 수업이 중단되었다.
1년이 지난 후 우연히 보게 된 SNS에서 하마터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짧은 커트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있었다. 날개옷 같은 원피스가 아닌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짠티의 모습과 많이 달라서 당황했었다. 그녀는 전과 다름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삶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짠티가 처음 가출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인지도 모르고 욕망을 찾아 떠돌며 모습을 바꾼 짠티였다.
사진 속 압사라 무희는 어쩌면 즐거운 마음으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희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순전히 짠티의 영향이리라. 사람은 경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도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