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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미경
수녀님을 뵙는 순간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곳이 세속과 떨어져 바깥출입을 금하고 기도와 노동 속에서 극기한다는 관상수도회라는 건 알고 왔지만 수녀님이 철창 안에 계실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습관처럼 충실했던 삶에 회의가 왔다. 하루 종일 움직여도 표시나지 않는 가사노동의 특성상 주부의 노동 가치는 제대로 평가 되지 않고 사회적인 위치 또한 열약함에 늘 피곤했다. 경제력만이 모든 기준이 된 시대에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그 동안의 내 삶이 작은 생물의 움직임만으로 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조그만 연못이었다면 한번쯤 세차게 흘러가는 계곡물이고 싶었다. 고른 수면위에 떠있는 개구리밥처럼 지리멸렬했던 일상을 뒤집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동화책 방문 판매를 시작했다. 삶의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했고 내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일에도 노래지고 하찮은 일에도 울긋불긋 열을 내는 낙엽수가 되어갔다. 작은 바람에도 떨어진 잎들은 집안을 뒹굴며 산만하게 했고 웃자란 가지는 집안의 햇빛을 점점 가리고 있었다. 집안일과 사회생활에 힘이 부친 나는 석 달도 못 되어 슬며시 일을 그만 두었다. 그 후 가끔씩 우울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상처가 깊은 것도 아니면서 내 무능에 신경이 곤두섰다가 무너져 내리며 무기력해졌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를 전복시키거나 회복시켜 자신을 바로 세워야했다. 쏘아진 화살처럼 삶의 목표가 분명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죽거나 파괴하기 전까지는 나올 수 없다는 관상수도회로 수녀님을 찾아온 것이다.
수녀님은 파리한 얼굴에 야윈 어깨를 가지신 분이셨다. 단정한 얼굴, 가지런한 매무새, 흐트러짐 없는 말투에서 자신의 중심이 단전에 잘 놓여있는 사람 특유의 진중함과 기품을 느꼈다. 주고받은 몇 마디의 안부에 수녀님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우주라 하신다. 아이에게 힘을 주기도하고 좌절하게 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품고 다독이라 하신다. 주부의 역할도 참으로 중요하단다. 가정을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용서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이가 주부라 말한다.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수녀님의 영혼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새였다.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수녀님은 생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삶에서 받은 상처를 품고 보듬어 주셨다.
세월의 흔적으로 반질해진 마룻바닥과 십자가상만이 걸려있는 복도를 지나 삐걱이는 나무대문을 열자 뜰이 보인다. 햇살이 눈부시다. 계절의 약속인양 한때 푸르렀을 나무에 단풍이 들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말없이 자신의 몫을 살아내는 것들이 어여쁘다. 햇살 가득한 이집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롭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몸짓이 자유롭고 상록수의 두터운 잎은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너나 분간 없이 어깨 출렁이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가 눈에 띈다. 봄이 되면 잎과 꽃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작은 보호색의 꽃을 피우는 나무에서 시나브로 선홍의 열매를 맺었다. 한결 같은 푸름으로 붉고 노란 단풍의 배경으로 있다가도 때가되면 제 빛깔을 뽑아낼 줄 아는 나무를 바라본다. 삶이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삶을 열정도 냉소도 아닌 그렇다고 그사이의 어정쩡한 타협도 아닌 상태에서 부유하지 않으리라.
삶이란 다른 이름을 가진 작은 개천으로 시작하지만 흘러흘러 도달하는 곳은 바다라는 한 이름의 장소라는 수녀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천천히 걷는다.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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