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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소금인형 2006. 1. 17. 11:12
  

 

 

                                     

/이미경

 

 

여자가 울고 있다.

 

친숙하고도 낯선 여자가 어눌한 말투로 무슨 말인가를 하며 울고 있다. 여자는 몸의 왼쪽이 마비되어있다. 여자가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외출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려는데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빠지며 목이 뻣뻣해지더란다. 놀라서 달려간 병원에서는 혈전이 뇌의 혈관을 막아서 생긴 중풍이라고 진단했다. 병원에 입원할 때만 해도 여자의 증상은 그리 심하지 않아 며칠 후면 퇴원할 줄 알았다. 사흘이 지난 지금 여자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목과 혀의 반도 마비되어서 말은 꼬이고 발음은 새어나가고 있다. 나는 여자의 말이 웅얼거림으로 들릴 뿐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여자의 울음소리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같이 아득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나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은 여자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여기저기서 위로의 말을 보내느라 바쁘다.

여자는 몸이 마비되면서 지각도 같이 마비되어버린 것인지 감정조절을 못 하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어린애처럼 울고 있다. 한쪽 입꼬리가 다른 쪽 보다 올라가 있는 모습으로 우는 여자를 보니 순간 화가 난다. 그것은 내 사랑하는 이의 치부를 낯선 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거부반응 같은 것이었다. 내 눈에 연민의 눈물이 어린다. 눈물 너머로 여자를 다시 바라본다. 아무리 쳐다봐도 내 어머니의 모습은 없다. 그저 낯선 여자가 울고 있을 뿐이다. 적응되지 않는 서먹한 느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인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말을 한다.

 

제발 울지 마세요. 나도 지금 상황이 두렵다고요. 조금 초라하다 느껴도 무심한 척 의연한 모습으로 있어주세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말 이예요.’ 마음속에서 토해내는 말을 삼키는 나는 작은 섬이 되어간다. 섬이 외로운 것은 혼자 있어서가 아니라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은 간밤의 폭풍우에 가슴 졸인 이야기도 바닷물에 유성이 쏟아지던 멋진 광경에 대해서도 말할 대상이 없다. 그저 침묵으로 옹이 지며 외로워하는 것이다.

 

이 병실 사람들은 대부분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노인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우울해하는데 그 우울함은 자신이 그어놓았던 선이나 사회적인 관념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남에게 보이기 싫어했던 행동이나 이야기를 풀어놓거나 아기처럼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젊어서는 빠듯한 살림에 식구들 건사하느라 이웃이나 자연에 교류를 못 했다. 더 늙기 전에 여행도 하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옷도 필요하고 경비도 필요한데 몸은 늙고 힘은 달린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형편을 모를 리 없는 노인들이 주고받는 내용은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노후대책이 따로 없는 부모의 이야기가 부담스러워 귀 기울여 듣지 않으려 한다. 노인의 정신세계는 들여다볼 생각도 않고 물질적인 계산만 하는 자식들에 인해 노인들은 섬이 되어간다.

 

고단했던 삶을 자식과 나누며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자식들도 안다. 단지 빠듯한 살림살이에 모르는 체할 뿐이다. 그래서 자식들도 섬이 되어간다.

다도해가 된 병실 안으로 석양이 비친다. 삶의 고통과 무게는 인정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 그 몫이 똑같은 고통의 무게라 해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인 것이다.

 

신경 안정제 주사를 맞고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삶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불안해하며 흔들리던 눈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세상살이도 소통되지 않는 것을 향한 빈 손짓이었으리라. 빈 손짓에 지칠 때쯤 사람들은 소통의 길을 막아버리고 섬이 되어가는 것일까.

 

눈물까지 흘리며 어머니가 나에게 하고 싶어 했던 말이 궁금해진다. 나는 옆 침대에 계시는 아주머니께 좀 전에 어머니가 무슨 말을 말했느냐고 물었다. TV를 보시던 아주머니께서는 자기 몸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놀라서 한 행동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경험 많은 아주머니의 소견으로는 서너 달 달만 치료하면 되리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계시는 맞은편 침대에는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계신다. 듣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누군가 하는 우스갯소리에 모두 웃고 있으면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며 화를 내신다. 웃지도 않고 누구에게든 명령조의 반말만 하시는 할머니는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이시다. 들리지 않는 분이 신경은 얼마나 예민한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시끄럽다는 말을 달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병실 사람들은 할머니의 행동이나 말에 무관심해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아주머니와 나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맞은편 할머니가 느그들 지금 내 욕하고 있지!” 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신다.

그때 나는 여리디여린 할머니의 눈을 보았다. 마치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순한 짐승 같은 눈빛이었다. 사위어가는 육신을 붙잡고도 죽음보다도 소외됨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슴이 싸하다.

병실 사람들은 할머니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모두 TV를 향해 있다.

그들의 동공에는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화면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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